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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1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1_11

by 조랑말림 202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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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직장은 내 생활에 안정감을 확보해 주었다. 직장에 다니며, 딸 둘을 낳았고, 대출받아 집도 샀다. 아이들 양육비며, 대출금을 갚고 나면 저축이나, 노후 준비는 꿈꿀 수 없었지만, 마치 죽음이, 병듦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나는 안정감 속에 파묻혔다. 그런 안정감이 아버지의 작고로 한번 흔들리더니, 엄마의 치매 판정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엄마가 79세가 되던 해인 2018, 엄마는 인지장애 즉 초기 치매 판정을 받으셨고, 81 2020년에 치매 중기로 병세가 악화되었다.

 두달에 한번씩 큰형이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치매 관련 진단과 약을 처방 받았지만,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병이 악화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약은 재깍재깍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엄마의 기억을 잡아 주지 못했다.

 남편의 죽음, 외할머니, 외삼촌들의 죽음들이 엄마의 기억에서 사라지더니, 삼형제와 함께했던 여행들, 일주일전 엄마의 안부를 묻기 위해 방문했던 나와의 시간들이 사라지고는, 같이 사는 며느리와 엄마 주변인들에 대한 기억들을 송두리째 지워버렸다.

 엄마는 중기 치매로 병세가 악화되신 이후로, 거의 매일 새벽 한두시쯤 깨어나 큰형과 같이 사는 가족들을 괴롭히셨다. '왜 모르는 사람들이 이 집에서 자고 있냐', 나가라고 소리치 시는가 하면, 밥을 못 먹었다며 밥을 내놓으라며 방바닥을 '쿵쿵' 주먹으로 내리치기도 하셨다. 큰형이 그만 하시라고 말리는 날에는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서 서로 할퀴고 넘어져 몸에 멍드는 일이 생기곤 했다.

 평소와 같이 업무를 마치고 조금 이른 퇴근을 한 어느 여름날, 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큰형이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였는데, 그 통화는 이렇게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김금옥님 아드님이세요?"

 "아 네, 누구시죠"

 "여기는 목련아파트 관리사무실인데요, 최무순님하고 최현수님 모두 전화를 안받으셔가지고요. 여기 단지 앞 경비실에 어머님이 계세요."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머님이 아파트 입구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시고 계셔서,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고요, 경찰관들이 경비실로 모셔왔습니다. 오셔서 모시고 가세요"

 " ~~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난 뛰듯이 엄마 아파트 경비실 앞으로 갔다. (나의 집과 큰형이 사는 아파트는 걸어서 2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경비실에는 엄마와 경비 아저씨 한명이 앉아 있었다.

 "엄마!"

 "오셨어요! 할머니가 비밀번호를 여러 번 잘못 누르고 계셨나 봐요, 경찰이 와서 ... ..." 나이 지긋한 경비아저씨가 말끝을 흐린다.

 "아 네, 제가 모시고 갈게요. 뭘 작성하거나 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모시고 가세요"

 "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엄마는 17년 넘게 오가셨던 아파트 입구 비밀번호를 기억해 내지 못하신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력이 부족하여 걷기 힘드신 엄마에게 한쪽 팔을 내어드릴 뿐.

 그 후로 엄마는 거의 집에만 계셨고, 나를 보고 싶다며,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막내아들 집을 찾아 나섰다가, 또다시 경찰관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오신 후로는 집에서 나가시지 못하게 되었다.

 큰형과 나는 고민 끝에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시려 했으나, 문제는 돈이었다.

 요양원 비용은 한달에 거의 200만원이 넘게 필요했다. 아들 삼형제가 있었으나, 모두 빠듯하게 생활하는 터라, 선뜻 누가 나서서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시자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나는 절망했다.

 엄마는 어릴 적 한국전쟁 때문에,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빚쟁이 때문에, 노년이 되어서는 치매 때문에 평안한 삶을 살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싶었으나, 현실은 팍팍했다. 25년의 직장 생활은 나에게 경제적 자유 혹은 풍요를 제공하지는 못했으며, 나는 이런 갑작스런 재정 부담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을 벌어야 겠다.

 엄마의 요양원 비용뿐만 아니라, 나의 노후, 그리고 가은이의 노후와 두 딸을 위해 경제적 자유가 필요했다.

 , 목줄처럼 채워져 있던 직장을 퇴직하기로 했다. 퇴직금을 발판으로 투자를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해서, 빠른 시일 내에 경제적 자유로 갈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도전해 보자, 안정된 생활 속에서 이렇게 처량하게 돈에 끌려 다닐 수는 없다. 절박하고, 절박하게 달려들어 보기로 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내 인생이 이렇게 평탄한 초라함으로 마무리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부딪혀 보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20204월 퇴사했다.

<1부 끝,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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