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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1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1_9

by 조랑말림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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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연인에게 군대라는 단어는 헤어짐, 이별, 재회, 고무신 등의 단어와 연결되곤 하는데 나에게 군대라는 단어는 주말 영화, 커피숍, 토요일 퇴근, 일요일 귀대 등의 단어와 연결된다. 내가 장교였기 때문에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 가은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 때문에 가은이와 떨어져 있던 시기는 입대 후 기초군사훈련을 받던 약 4개월과 임관 후 특기 교육을 받던 4주가 전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가은이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는 시기였다.

특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을 때, 좀 더 빨리, 자주 가은이를 볼 수 있는 서울 근처 부대로 가고 싶어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히 오산 근처로 배치되었다. 오산은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는 학사장교 선/후배도 있었으나, 나는 BOQ(Bachelor Officer Quarter)라 불리는 장교용 독신자 숙소에서 지냈다. 독방은 아니었고, 2 1실이었는데, 다행히 입대 동기와 같은 방을 사용했다. BOQ는 시설이 낡고, 단열과 방음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는, 집에서 독립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자대 배치를 받고 어리버리하게 입대 동기와 함께 단장님께 전입신고를 마친 첫 주말, 군복을 입을 채로 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춥고, 덥고,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도 있었지만, 같이 입대한 동기들이 있어, 가은이가 있어 견딜 수 있었다.

 가은이에게 뭔가 선물을 하고 싶어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향기에 이끌렸는지 꽃가게 앞에 다다랐다. 거기서 빨간색 장미꽃 한 다발을 사 들고는 가은이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 앞에 쭈볏거리며 서있던 가은이에게 등뒤에 숨겨 놨던 장미 한 다발을 건넸다. 8월 말 가을 문턱을 향해가고 있는 맑은 햇살을 받으며 환하게 웃는 가은이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사실 나는 한번도 여자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없었다. 그저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엄마에게 전달한 기억이 있을 뿐이지만, 그마저도 엄마의 부재로 온전히 이뤄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 마음을 쌓아놓고 살게 되면 그 마음의 온기도 사라져 무감각해지는 것이리라.

꽃다발을 여인에게 선물하는 그런 달달한 감정이 내게 존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군복을 반듯하게 다려 입고 장미꽃을 내밀고 있던 나는, 신림동 뒷산을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은이에게 전달한 그 장미는 나의 마음이었고, 결혼 프러포즈였다.

 가은이는 내가 군대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제대 후 어렵게 직장을 구할 때까지 내 곁을 지켜주었다.

 군대를 제대한 그 해 12월에 나는 자그마한 회사에 취업을 하였고, 직장 3년차인 1997 4월에 가은이와 결혼을 했다.

 가은이는 가끔 TV에서 연인들이 프러포즈하는 장면을 보면 자기는 프러포즈를 받은 적이 없다며 한탄을 한다. 이벤트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나는 결혼을 앞두고 별도로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벌써 5년 전에 장미꽃 한다발과 순수한 표정으로 프러포즈를 했으니까.

 "가은아, 그때 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미꽃을 준 게 프러포즈야" 아쉽게도 결혼해 달라는 이야기는 못했지만 ... ...

(가은이가 옆에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9화 끝, 10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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