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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1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1_2

by 조랑말림 2023.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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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나의 아버지와 엄마는 모두 실향민이다. 두분 모두 1950 6.25전쟁 발발 전 북쪽에서 남쪽으로 월남을 하셨고, 월남한 이후 지금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셨다. 아버지의 고향은 평안북도 강계이고, 엄마의 고향은 평안북도 신의주다.

 두 분은 월남하여 서울에서 만나, 결혼했다. 뒤에서 다시 자세히 다루겠지만 아버지는 친구와 함께 남쪽으로 온 관계로 부모님 즉 나의 친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북쪽에 계신 상태로 월남하셨고, 엄마는 가족, 모두 함께 남쪽으로 왔으나 월남할 당시 외할아버지는 이미 고향에서 돌아가신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뵙지 못하였고, 오로지 외할머니만 뵐 수 있었다. 그런 외할머니도 내가 국민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사실상 내게 조부모에 대한 기억은, 단지 외할머니에 대한 매우 짧은 기간 동안에 대한 것이다.

 외할머니는 치매셨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큰 키에( 160cm은 넘으셨을 것 같다) 하얀 한복을 입으시고 백발을 곱게 빗어 넘기신 머리를 하시고는 성경책을 열심히 낭독하시거나 찬송가를 나지막하게 부르시고 계셨다. 이것은 좋을 때 이야기고 치매로 인해 병증이 들어날 때는 밥을 주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꾸지람을 넘어 윽박을 지르고(식사를 마친 바로 직후에 말이다.), 손자 3명이 너무 소란스럽다며 총채의 손잡이 쪽을 회초리 삼아 아이들에게 휘두르곤 하셨다. 증상이 심해 지시면서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해 할머니 방에서는 악취가 나고, 할머니의 등장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공포와 불안을 가져다 주었다.

 5 ~ 6살 정도였던 내가 기억하는 것은, 외할머니가 집에 있는 것이 싫었던 모양인지, 할머니의 회초리를 피해 도망 다니면서 "할머니 집에 가, 할머니 왜 집에 안가?"를 외쳤던 순간이 있었다. 이런 일은 자주 있었는데 집안 이곳 저곳을 뛰어 다니며, 집에 있는 화병과 그릇들을 깨트렸던 기억이 있다. 어린 손주의 도발에 할머니는 "이 넘이" 하며 상기된 눈썹을 치켜 세우셨지만, 금세 쫓는 것을 멈추시고는 다시 방안으로 몸을 돌리셨다. 나중에 찾아낸 사진 속 외할머니는 삼형제를 보살피며 신림동 앞마당에서 웃고 계셨지만 나에게 외할머니와 함께 했던 좋은 추억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마지막날의 기억만 생생하게 남아있을 뿐.

  그 날은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던 어느 저녁이었다. 우리 삼형제와 엄마는 저녁식사를 마쳤고, 외할머니는 외할머니방에서 따로 식사를 마치신 후였다. 식사 후 포만감에 충만했던 나는 형들과 함께 부들부들한 앙고라(?)이불을 덮은 채로 안방 아랫목의 따뜻한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낼 심산으로 벽에 기대 비스듬히 누워서 흑백 TV를 보는둥 마는둥 잠과 TV속 환상을 결합시키고 있었다. 편안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몽롱한 잠결에 빠져들 때쯤 할머니방에서 소리가 났다. " ~~ 우야" " ~~ 우야" 난 잘못 들었는데 아니 애써 듣지 못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한번 더 들렸다. "~~우야"

 "현우야 할머니가 부르신다. 가봐" 큰형이다. 문 근처에 형이 있으니 본인이 가면 좋을 것을 굳이 내 이름을 불렀다고 주장하며, 나에게 가보라고 재촉한다. '그래 내가 제일 씩씩하지' 마음을 다잡으며, TV에 눈을 고정시키고 피식거리는 큰형을 한번 올려 보고는 할머니 방으로 향했다.

 "할머니 왜요" 방문을 벌컥 열며 외쳤다. 그 다음 장면은 마치 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데, 할머니는 베게 옆으로 머리를 떨구신 상태로 누워 계셨고, 이불은 반쯤 내려와 있었으며, 옷은 항상 입으시던 하얀 한복을 입고 계셨다, 이불과 요, 할머니 한복까지 모두 흰색이고 할머니 얼굴마저 백지장처럼 하얗게 굳어있었다. 단지 할머니 입술 옆으로 붉은색 선혈이 아주 조금 비치고 있을 뿐.

 난 그 자리에서 순간 얼어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 엄마"를 외치며 부엌으로 달렸다.

 그날이 외할머니와의 마지막 순간이다. 외할머니는 그날 돌아가셨다. 난 그 후 일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장례식은 어찌 지냈고, 어느 친척분들이 조문을 왔었는지 모른다. 물어본 적도 없다. 그저 외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더 이상 '집에 가라고' 외칠 존재가 없어졌다는 것만 알았다.

 외할머니 묘지는 청계산에 있다. 내가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부모님과 함께 아니면 외사촌 누나, 형과 자주 찾아갔지만 그 후로는 어쩌다 정말 어쩌다 한번씩 찾아 뵙는다. 삶 속에서 부대끼며 허전해진 내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

'할머니 그 곳에서 잘 계시죠!!!'

 <2화 끝, 3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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