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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1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1_4

by 조랑말림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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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달리

 신림동 생활은 국민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끝이 났다. 그해 겨울 우리는 강남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지금과 같은 시절인 경우, 신림동 단독주택에서 강남 아파트로 이사한다면 '로또' 1등에 당첨이라도 된 줄 알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 ...

 국민학교 2학년 가을,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친구와의 관계 등 거칠 것이 없던 나에게 한가지 고민이 있었으니, 그 고민은 학교 화장실이었다. 난 학교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의 매번 정리되지 못한 배를 부여 잡고, 각종 군것질거리나 오락거리에는 눈길을 돌리지 못한 채, 종종 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 날도 종종걸음으로 대문을 들어서자 마자 집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을 향하면서 살펴보니 집 현관문이 열려 있고 신발이 여러 켤레 놓여 있는 것이 수상했으나,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일단 빨리 서두르자.

 한결 홀가분해진 상태로 화장실을 나서자,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들리고보이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여러 어른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떠드는 소리, 누군가 집에서 후다닥 뛰어 나오는 모습. 우리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슨일이지?' 호기심 반 두려움 반 들어선 마루에서는 어른들이 빙 둘러 앉아 소위 '경매'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그 경매의 대상은 우리집 물건이었고, 화병이며, 흑백 TV, 자개장, 심지어 벽에 걸려 있는 호랑이 그림 카패트까지, 우리집 살림살이 전부를 경매하고 있었다. 어떤이가 가격을 부르고(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사람이 집달리이다),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응찰해서 경쟁자가 없으면, 그 자리에서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가져갔다. 그 곳에 아버지나 엄마는 없었다.

 경매에 나온 그 물건들은 빨간 딱지가 붙은 물건들이 대상이었는데, 며칠 전 내가 그 빨간 딱지를 이상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났다.

 "형 이건 뭐야, 빨간 딱지를 TV에다가 붙여 놨는데?" "압류 ~, 제거 하지 마시오"

"하지마" 내가 손으로 TV 옆면에 붙어있는 그 빨간 딱지를 때려고 하자,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단호하고 격앙된 목소리라 놀라서 쳐다본 엄마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시며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그날 밤은 아버지와 엄마의 말 다툼 소리로 잠에서 종종 깨어났던 것 같다.

 그 빨간 딱지 붙여진 물건들이 하나 둘씩 없어지고 나니, 집안은 조용해 졌다. 마치 이사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정리를 시작한 집처럼, 원래 자리 했었던 물건들이 사라진 공간은 곧 다른 자리도 모두 비워질 것을 예견 하듯 그렇게 덩그러니 어색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일이 벌어진 지 두~세달 후에 우리는 강남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신림동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아버지와 엄마는 이혼을 하셨다. 아버지의 후일담에 의하면 신림동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집을 구할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하시다가, 강남아파트 신규 분양에 대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신히 진짜로 간신히, 대출을 받아서 강남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 대출금을 약15년 동안 매달 갚으셨는데, 훗날 원리금 상환 내역이 빼곡하게 인쇄된 대출통장을 본 나는 가슴 한쪽이 시큰해 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 가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서울은행에 원리금을 입금하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집은 안락했던(?) 신림동에서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는 변화의 중심지 강남으로 이사했다. 여름철 등목을 위해 마중물을 넣어 열심히 퍼 올리던 수동(작두)펌프, 가을마다 내 주먹만한 대추를 우수수 내려주던 대추나무, 겨울을 나기 위해 김장김칫독을 묻던 앞뜰, 그리고 지금은 얼굴조차 잊혀진 내 국민학교 1~2학년 친구들을 모두 남겨두고 우리는 강남으로 이사했다. 지금까지 본적 없는 8차선 자동차 길, 무슨 호텔이 지어질 거라는 푯말과 함께 끝을 알려줄 수 없다는 듯 땅파기를 하고 있는 공사장, 담뱃갑 같은 직사각형의 빌딩들, 한번 들어가면 미로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공포심을 주는 아파트 단지들이 있는 곳으로.

 엄마는 이사하는 날 잠깐 얼굴을 보였으나, 그 후로 2 ~ 3년 동안은 집에 오시지 않았다. 신림동 상가회에서 계주를 했던 엄마가 그 곗돈을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했다거나, 노름으로 곗돈을 모두 날렸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들려 왔어도, 정작 엄마의 모습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고, 우리 삼형제에게 "그냥 엄마는 없다고 생각해"라며, 더 이상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의 골목대장 시절은 이렇게 끝났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서 그 신림동 집을 더듬더듬 찾아 갔던 적이 있다.

'담장이 이렇게 낮았던가, 집들은 이렇게 빽빽하게 있고' 엿장수에게 냄비를 팔기 위해 있는 힘껏 발로 ''찼던 그 커다란 철재 대문은 너무나 아담하고, 전봇대를 우리편 본부라며 다방구(?)를 위해 요리조리 날렵하게 뛰어다니던 집 앞 길은 두 사람도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골목이라니. 더 이상 내 추억 속 신림동은 남아있지 않았다. 겨울철 연탄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밤을 구워 먹던 따스하고, 평화롭던 시절은 추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4화 끝, 5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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