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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1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1_3

by 조랑말림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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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나는 신림동에서 태어났다. 신림동에서 태어나서 국민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하는 날까지 살았다. 1969 ~ 1977년 약 8.

 그 당시 신림동은 주택단지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군데군데 신식 주택이 지어지고, 구획정리가 진행되면서 집이 들어설 장소들이 듬성듬성 비워 있었으며, 여기저기 집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수도나 전기 시설 공사를 위해 자재들이 쌓여있었다. 신림동이 주택단지로 개발되던 것과는 달리 옆 동네인 난곡은 무허가촌이 형성되어 인구밀도가 높았다. 가끔 난곡 쪽으로 놀러 갈 때면 전반적으로 좀 어수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 당시 신림동과 난곡을 지금 상황으로 생각해 보면 신도시 주택단지 개발 현장과 구도시 느낌이랄까. 신림동은 산 비탈을 따라 위쪽부터 주택들이 들어서며, 동네 모습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으며, 우리집은 신림 대로변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림동 집은 아버지가 직업군인 당시 모으신 돈으로 땅을 사서 지은 곳이었다. 앞마당과 뒷마당이 있고, 큰 대추나무와 앵두나무, 토마토 등을 키우던 텃밭과 특이하게 바나나 나무가 심어있는 정원, 장독대, 화장실(화장실은 집 밖에 별도로 있었다.), 인공 연못(아주 작은 연못이다. , 길이가 약 2미터, 깊이는 성인 무릎 정도)이 있던 단층 짜리 아담한 집. 아버지께서는 정원 가꾸기에 진심이셨는데, 아침마다 잡초를 뽑고, 물과 거름을 주며, 정성을 다하셨던 기억이 있다.

 난 그 집 셋째 아들로 골목대장이었다. 든든하지는 않지만 두 형이 있고, 그 당시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큰 덩치와 큰 키를 가졌던 나는, 또래 아이들을 몰고 다녔다. 다른 동네 아이들이 와서 우리 동네 아이들을 괴롭혔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르르 몰려 가서 세(?)를 과시하거나, 아이들이 모여 어떤 놀이를 할까 고민 중일 때는 동네 뒷산으로 놀러 가자며 앞장서곤 했다. 겁보였던 큰형, 예민하고 부실한 작은형에 비해서 당시 나는 튼튼하고 건장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니 반에서 내가 제일 키가 컸으며(학급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운동 잘하게 생겼다고 육상부에 차출되었다. (실제로 달리기도 잘했다. 물론 큰 키가 여러모로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아침마다 대문 앞에 걸려 있는 병우유를 나발 불고, 학교로 걸어간 다음 책가방을 책상 위에 던져 놓고 학교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다. 육상부 아침운동 때문이다. 운동장을 여러 바퀴 돌거나, 팔 굽혀 펴기를 하며, 몸을 진짜 운동선수처럼 만들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웠다. 운동, 공부(수업 시간에만 집중), 아이들과 놀이, 내 앞에 방해물은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전역하셔서 엄마와 함께 신림동 대로변에 상가를 얻어 이불 가게를 차리셨고, 장사도 뭐 잘 되는 편이었는지 내가 가게에 놀러 갈 때 마다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집 뒤편 골방에는 이불 솜들이 가득 차 있어, 숨바꼭질을 할 때 그 방에 들어가 잠들어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날 우리집 뒤쪽으로 커다란 저택이 완공되었는데, 그 집에 내 또래 아이가 이사 왔다. 하루는 그 집 아주머니가 나하고 작은형을 불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갔다. 집은 2층으로 지어진 양옥으로 한눈에 봐도 잘사는 집 같았다. 정원에는 잔디가 깔려있고, 잔디 한쪽 옆으로 의자그네가 놓여 있었다. 양쪽으로 놓인 의자가 같이 앞뒤로 움직이는 그네 말이다. 부러움에 올라탄 의자그네는 너무 재미있었는데, 부러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먼 하늘만 올려 봤던 기억이 있다.

 밥 먹는 시간이 되어서 정원에서 놀던 우리들은 그 양옥 집으로 들어갔다. 밥상이 아닌 식탁이 있고 소시지, 계란, 고기 등 그 당시 맛난 반찬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그 집 아주머니는 아이들끼리 사이 좋게 지내라며, 우리아이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사실 그 집 아이는 그 뒤로 내 기억에 없다. 그 집에는 그 뒤로 찾아가지 않았는데 아마 그 집 아주머니가 우리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하신 말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주머니는 자신들 집터를 우리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팔아 주어서 집을 잘 지을 수 있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땅은 원래 아버지 소유였던 것이다. 훗날 나는 아버지에게 왜 그 땅을 파셨냐고 물어 봤었다. 아버지는 신림동 집을 짓기 위해서 팔았다고 하셨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 땅을 우리가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그 넓은 잔디 땅도 우리 것 이였을 텐데'하며 아쉬워 했다.

 그날 나는 그 집 화장실에서 특이한 것을 봤다. 그 특이한 것은 나중에야 그 정체를 알아 냈지만, 그 당시로는 도무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집 화장실은 수세식이었다. 우리집은 푸세식(?) 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신문명은 알고 있었으나, 물을 내리자 파란색 물이 나오는게 아닌가? '이건 뭐지' '왜 변기에서 파란색 물이'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으나 난 입을 다물었다. 부러움과 뒤쳐짐을 들키기 싫어서였으리라.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유쾌하지 않았다. 맛있는 거 많이 먹었다며 엄마 무릎에 누워 떠들어 대는 작은형이 어찌나 얄미워 보이던지. 사실 작은형이 잘못한 것은 없다 내 마음속에서 상대적 열등감이 옹졸하고 편협한 자신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정체를 몰랐던 변기 세정제에 완전히 압도 당했던 것이다. '부자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사용하고 있구나.' 내 어린 마음에는 부러움과 시기심, 열등감이 자리잡았다.

<3화 끝, 4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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