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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1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1_6

by 조랑말림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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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재수를 하고 대학교에 간 큰형 덕분(?)에 난 '재수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불호령에 따라 재수없이 대학교에 갔다. 나름 재수를 피하기 위해 성적보다 낮춰서 지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상당히 운 좋게 입학한 것이었다.

 엄마의 부재와 빚, 상대적 빈곤을 보고 자란 나는 돈에 대한 갈망과 자립을 위해 무작정 돈과 연관된 학과(경상계열)를 선택했다. 다른 학과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지만,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표도 없었기 때문이다.

 학과 공부에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동아리(영어 공부하는 동아리에 가입했었다) 생활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그 때, 불현듯 목표가 생겼다.

 미국 유학.

 1989년 내가 대학교 2학년 봄을 무심하게 여름으로 넘기고 있을 쯤.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 친구분이 아버지에게 동업을 요청하셨고, 이민까지 염두에 두신 아버지는 아르헨티나를 홀로 다녀오셨다. 어찌된 일인지 아르헨티나를 다녀오신 뒤, 아버지는 이민이니 사업이니 하는 이야기는 일절 꺼내시지 않으셨다. (뭔 일이 있으셨나?)

 아버지는 아르헨티나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오시는 길에 미국 뉴저지에 살고 계시는 엄마 친척분들을 만나 뵙고 오셨다. 아르헨티나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직항이 없었던 관계로 미국에서 경유를 하셨는데 귀국하는 길에 뉴저지에 있는 엄마의 친척분들을 만나고 오신 것이다.

 엄마의 고향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평안북도 신의주로 엄마 쪽 친척분들은 남쪽으로 내려온 후 대부분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 엄마의 둘째 오빠 즉 나의 둘째 외삼촌은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계셨으며, 엄마의 사촌(외할아버지 동생 가족)들은 뉴저지에 살고 계셨다. 뉴저지에 살고 계신 분들 중에는 엄마의 첫째 오빠(나의 첫째 외삼촌)의 아들, 딸도 계셨고, 이분들은 첫째 외삼촌과 외숙모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릴 적 약 1년 동안 신림동 우리집에서 같이 살기도 했던 분들이다. 이분들 중 특히 외사촌 누나가 나의 유학에 적극적이셨는데, 나의 유학 이야기가 이런저런 이야기 중 툭 튀어나오자 '뉴저지 근처에 좋은 대학교가 많이 있으니, 숙소나 생활하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현우가 생각 있으면 유학을 보내라고 하셨단다.

 아르헨티나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가 나에게 유학을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신 것은 아버지가 귀국하시고 2 ~ 3일이 지난 후였다. 난 그 자리에서 가겠다고 했다. 군대 문제가 있었지만 (한국 남자는 모두 군대를 가야 한다. 그 당시는 거의 3년이 필수 복무 기간이었다.) 뭐 어찌되겠지 하며, 난 유학 준비를 했다. 나의 목표는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꿈을 크게 가지라고 했던가! 경영전문대학교 중 미국 최고 대학

 유학을 위한 TOEFL 시험 공부를 하고, 미국에서 유학 관련 정보도 여기저기 물어 물어서 어느 정도 확인을 했다. TOEFL 점수가 생각보다 높게 나오지 않아서 고민을 하던 중 뉴저지에 살고 있는 외사촌누나가 미국에 와서 LANGUAGE SCHOOL 다니면서 준비해도 된다고 연락이 왔다. 방도 있고 차도 구해 놓았으니 오라고. 얼마나 마음이 벅찼던지.

 아버지에게 말씀 드리자, 아버지는 생각해 보자며, 즉답을 해주시지 않았다. LANGUAGE SCHOOL 등록금이 필요했는데 아버지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한 일주일이 지났을까, 아버지는 군대를 갔다 와서 유학을 가는 것이 좋겠다며 유학 시기를 늦추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것을 유학 관련 비용을 줄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드렸고, 그 후로 유학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접었다.

 TOEFL 시험 공부를 위해 난생 처음 영어 학원을 다니고, TOEFL TEST를 위해 일요일 아침 낯선 대학교 강의실을 찾아 다니며 품었던 희망이 한 순간에 날아갔다.

내 머리 속에는 빨리 대학교를 마치고 내가 스스로 돈을 벌어 자립을 해야겠다는 생각만이 자리잡았다. 그 후 내가 대학교 3학년일 때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나보다 한살 나이 많은 외사촌누나(둘째 외삼촌 딸)가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여름방학을 이용해 온 적이 있었는데, 이때 나를 보고 로스앤젤레스로 유학을 오라고 한적도 있었다. 등록금이나 생활비 걱정하지 말고 일단 오라고. 그러나 한번 좌절 당한 나의 마음은 새로운 희망을 품기에는 너무 굳어져 있었다. 난 결국 한국에 남았고, 군대에 갔다.

<6화 끝, 7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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