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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2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2_13

by 조랑말림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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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아르헨티나

고모부 여기요, 여기

김수명의 첫째 딸 유미가 무순을 보며 손을 흔든다. 무순이 뉴욕 JFK 공항 출국장을 나오며 환하게 웃는다.

오래 기다렸어? 잘 지냈고?” 무순이 유미를 보며 다정스럽게 이야기한다.

네 그럼요, 여기는 제 남편 서경수 에요, 여기서는 제임스라고 불러요

유미가 옆에 서있는 키가 크고, 순하게 생긴 남자의 팔을 치며 이야기한다.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무순과 경수는 악수를 했다. 무순은 경수의 손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반가워요, 고맙고

고모부, 가면서 이야기해요, 4시간 가야 해요유미가 무순의 바퀴 달린 트렁크를 받아 끌면서 씩씩하게 앞장선다. “가방도 주세요경수가 무순이 매고 있는 가방을 도와주겠다는 듯 손을 내밀자, 무순이 괜찮다는 듯 경수의 어깨를 다독인다.

무순에게 뉴욕의 19893월 끝자락은 추웠다. 그것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순은 어제 까지만 하더라도 여름의 끝자락 날씨를 보여주던 남반구 아르헨티나에 있지 않았던가! 뉴욕의 번화한 빌딩 숲을 빠져나오자, 도로 양 옆으로 가로수들이 촘촘하게 심어져 있는데, 나무의 키가 10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여긴 나무도 크구나무순이 이런 생각을 하며, 눈을 살짝 감으니, 운전석에 앉은 유미가 백미러를 보며 이야기한다. “피곤하면 좀 주무세요, 올 때는 애 아빠가 운전해서 갈 때는 제가 해요” “그래, 고맙구나, 애가 몇 살이야? ”무순이 감은 눈을 살짝 떴다가 다시 감는다. “지미는, 아니 재민이는 12살이에요. 윤석이 딸 수현이 보다 5살 많아요무순에게는 유미의 목소리가 캄캄한 동굴 안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무순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진다. 유미가 차 히터 온도를 조금 올린다. 차 뒤쪽 창문에 김이 서려 뉴욕의 아침 햇살이 자동차 창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흩어진다. 어느새 차는 뉴욕을 지나 뉴저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고모부, 아르헨티나는 왜 가셨던 거 에요? 전화 받고 많이 놀랐어요" 유미가 소고기를 프라이팬에 구우면서 이야기한다. 살짝 익힌 고기를 들어 가위로 쓱쓱 자른다.

"코르도바에서 고향 친구가 가죽옷 공장을 하는데, 동업을 하자고 연락이 와서 보러 갔지, ! 너희 주려고 무스탕 가지고 왔는데, 남자 것만 있네, 서서방한테 작겠는데, 잠깐만" 무순은 유미가 머무는 동안 사용하라고 내준 이층 방으로 올라가서, 옅은 갈색, 짙은 갈색 남자 무스탕 두개를 가지고 내려왔다.

"하나는 서서방 입고, 하나는 윤석이 주려고, 한번 입어봐 서서방" 무순이 무스탕 중 좀 커 보이는 옷을 경수에게 건넨다. 옆에 있던 재민이가 경수에게 건넨 옷에 와락 달려들더니 비릿한 가죽 냄새를 맡고는 표정이 일그러진다.

"암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데, 좀 무겁 더라고, 냄새도 좀 빼야겠고"

"잘 입겠습니다 고모부님" 경수가 꽉 끼는 무스탕을 벗으며 이야기한다.

"윤석이는 좀 늦을 거에요. 세탁소 마무리하고 온다고 했어요" 유미가 밥과 고기를 식탁에 놓으며 이야기한다. "드세요, 지미는 손 씻고 와야지"

"세탁소가 크던데, 공장같더라" 무순이 고기를 포크로 찍으면서 이야기한다.

"윤석이가 작년에 들어오면서 투자를 좀 더 해서, 뒤쪽으로 늘렸어요, 체리힐 이쪽에는 사무실이 많아서요, 와이셔츠하고 양복바지하고 지속적으로 물량이 있어요. 올케가 하는 수선도 일이 많아요" 유미가 재민이에게 똑바로 앉으라는 듯 재민이에게 손을 휘저으며 이야기한다.

"너희들이 잘 자리잡아서 다행이야" 무순이 1층 부엌 앞에 놓여 있는 식탁에 앉아 복층 구조인 유미내 집 천장을 올려보며 말한다.

"이 집도 3년 전에 간신히 샀어요, 대출로요, 여긴 모기지가 잘 되어있어 서요 ~~, 이제 평생 갚아야죠" 유미가 경수를 보며 웃는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로 가실 거에요? 어디라고 그러셨죠 코르바?"

"아 코르도바, ~~ 안 갈려고, 가서 보니까 거기도 어렵 더라고, 가죽공장에 숙련공이 별로 없고, 급여를 주면 2 ~ 3일 공장에 안 나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주급으로 주던데, 하여튼 힘들어 보여, 사람 관리하는 게" 무순은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근창이가 떠올랐다.

 

근창이의 간곡한 요청으로 강남아파트를 팔아 투자이민까지 할 각오로 찾아간 아르헨티나는 생각보다 열악했다. 가죽 공장은 폐기물이 잘 정리되지 않아 폐수가 흐르고, 제작 대기 중이라며 말리고 있는 가죽에는 파리 등이 꼬여, 지저분해 보였다. 공장 관리하는 사람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쳐 보이고, 공장에서 활기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저녁이 되어 근창이와 함께 간 공장 근처 바에서는 그렇게 흥겨워 보이는 사람들이 낮에 공장에서는 풀이 죽어 마치 끌려온 사람처럼 움직였다. 무순이 근창에게 동업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미국으로 가기 위해 타라벨라 공항으로 들어가자, 실망으로 굳어진 표정이 근창의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근창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무순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어릴 적 근창과 함께 숭적산 기슭 시냇가에서 물고기 잡던 일이 생각났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비행기 창문 너머 불빛이 점점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무순이 눈을 감자 눈 속에서 따뜻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고모부" 윤석이 유미집으로 들어서며 무순에게 인사를 한다.

"윤석이 왔구나. 잘 있었고. 질부도 같이 왔네" 무순은 윤석 뒤에서 말없이 인사하는 윤석 아내 미숙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미숙은 타지 생활에 적응이 힘들었는지 살이 많이 빠져 보였다. 얼굴에는 울긋불긋한 두드러기도 보인다. '고생이 심한가 보네' 무순은 미숙은 보자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살림만 하던 사람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 와서 의류 수선을 배우며, 생활비를 보태고, 아이 둘을 키우고 있으니, 편할 리가 없다.

"배고픈데 먹을 것 좀 있나?" 윤석은 유미를 향해 호기롭게 말을 건넨다.

"이리와 앉아, 밥하고 고기하고 반찬 있으니 ~~" 유미가 식탁에 반찬을 가져다 놓으며 이야기한다. 윤석보다 1살 어린 경수는 아들 재민이를 재우기 위해 이층으로 올라갔다. 무순은 윤석과 경수 사이가 서먹한 것을 보고 놀랐으나, 윤석이 이민 온지 얼마되지 않아 서로 마음 잡는데 시간이 필요하겠 거니 하고 생각했다.

"고모부, 만철이 삼촌 보러 가실 거죠?" 윤석이 고기와 밥을 입안에 가득 넣고 이야기한다. 만철이는 금옥의 사촌 동생으로 금옥 작은아빠의 넷째 아들이다.

"어디 있는데?"

"만철이 삼촌은 애틀란틱시티에 있어요, 거기서 돈 많이 벌어서 카지노에도 투자를 하고, 부자예요 부자" 윤석이 신이 나서 목소리가 높아져 간다.

"뭘 해서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어?" 무순이 윤석의 기분을 맞춰 주며 물어본다.

"상가도 2갠가 3갠가 있고요, 이것저것 다 팔아요, 잡화점이에요, 장사가 잘돼요" 윤석이 컵에 물을 따르며 이야기한다.

"형제가 4형젠가 그랬지 아마, 만기, 만식, ... ... 만철, 셋째가 이름이 뭐였더라?"

무순이 윤석을 쳐다보며 말한다.

"만진이 삼촌요, 만진이 삼촌은 텍사스에서 교수님 한다는데 잘 못 봐요, 만철이 삼촌 언제 만나러 가실지 알려 주시면 제가 모시고 갈게요" 윤석이 식탁을 떠나 거실로 나왔다. 무순은 먼 이국땅에 이민 와서 잘 뿌리내리고 있는 유미와 윤석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이렇게 자리잡기 위해 또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짠 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이며, 뉴저지의 3월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미국에 있는, 친척들의 안부를 확인하며 오랫동안 전하지 못한 마음을 나누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밤이다.

<13화 끝, 14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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