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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2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2_14

by 조랑말림 2023.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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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무순은 이북오도청에서 동화경모공원 묘원 분양 신청을 하고, 구기터널 삼거리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간암 시술을 처음 받고 나니, 자신의 묘자리를 미리 구해 놔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때마침 북쪽이 보이는 파주 언덕에 묘원을 조성해서 실향민들에게 분양한다는 공고를 접했기 때문에, 서둘러 이북오도청에 들러 묘원 신청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무순 손에는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가 들려 있었는데, 8월쯤 진행한다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서류를 넣어보라며, 이북오도청 행정 직원이 챙겨준 서류였다. 무순은 신청서를 손에 꼭 쥐고 버스에 올랐지만, 아직 어찌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살아 계실까? 만날 수 있을까?' 무순은 요즘 급격히 힘이 빠지고, 욱신욱신 쑤시기까지 하는 오른쪽 무릎을 어루만지며, 햇빛에 환호를 보내 듯 흔들리는 초록의 가로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2000 6월 남과 북 정상이 평양에서 만났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화통일을 실현시키겠다는 공동선언을 하자, 남과 북은 마치 금방이라도 통일이 다가올 것 같은 무지개 빛 희망에 휩싸였다. 무순은 신기루 같은 낙관론을 추종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경계하고 있었지만,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자 혹시나하는 기대감이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현기가 집으로 들어서며 의례적으로 인사를 한다.

그래 다녀왔어, 수고했다. 차가 좀 막히지무순이 둘째 현기가 들어서는 것을 바라보며 쇼파에 앉아서 이야기한다.

네 차는 뭐 항상 많아요, 여기 앞에 도로도 정비 중이라 … …” 현기가 방으로 들어가며 대답을 한다.

무순은 1998년 청담동 아파트가 재개발에 들어가자, 재개발 분양권을 팔고 용인 수지로 이사했다. 청담동 아파트 분양권은 재개발 완료 이후 올라갈 아파트 가격을 반영해서 기존 아파트 시세보다 프리미엄(premium)이 붙어 있었다. 생활 자금과 아파트 대출 잔액 상환에 어려움이 있던 무순은 이 분양권을 팔아 아파트 대출금을 상환하고 용인 수지에 아파트를 한 채 구입했다. 그러고도 남은 돈 3억은 은행에 넣어 이자를 받아 생활비로 썼다. 청담동 아파트를 팔지 말자는 현우의 만류도 있었지만, 그동안 저축한 돈이 점점 바닥을 들어내고 있는 형편이었으니, 무순으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아버지 저 서류는 뭐 에요?” 현기가 무순과 바둑을 두며, 쇼파 팔걸이에 있는 서류를 보며 묻는다. “응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무순이 바둑판에서 눈을 때지 못하며 말한다. “신청하실 꺼 에요현기가 잡았던 바둑돌 놓으며 묻는다. “생각 중이야, ~~ ! 이건 아다리잖아. 아다리면 아다리라고 이야기했어 야지, 한수 물러무순이 바둑판에 놓였던 백돌을 다시 들면서 이야기한다. “아 무르는 거 없어요, 아니 이건 뻔히 보이는 거잖아요, 안돼요 안돼, 아니 바둑 두시는 분이 아다리를 못 보면 어떻게요?!” 현기가 백돌을 집어 든 무순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으며 이야기한다. (아다리 : 바둑판에 위치한 바둑돌 4길이 모두 다른 색 돌로 막히면 따먹히게 되는데, 3길이 막히고 1길만 남았을 때 쓰는 바둑 용어, 우리말로는 단수라고 한다.)

실랑이를 하던 바둑은 현기의 불계승으로 마감되었다.

오늘 좀 바둑이 되는데요현기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바둑돌을 치우며 말한다. “이산가족 신청해 보세요, 신청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럴까?” 무순은 다시 한번 더 쇼파 위 서류를 쳐다보았으나, 서류를 집어 들지는 않았다. 이산가족 신청 서류는 그렇게 며칠간 쇼파 위에 놓여 있었으나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마치 쇼파 팔걸이의 부속품처럼 그곳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

 

 저기 저쪽이 북한이야

 아 북쪽이 보이네요, 저기에는 사람이 살까요?” 현우가 아버지 무순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며 말한다.

  살겠지, 아니면 그냥 선전용 건물만 지어 놨을 수도 있고무순은 경모공원을 삥 둘러보며 이야기를 이어서 한다. “저 앞쪽이 황해도 사람들 용이고, 이쪽 언덕이 평안도 사람들이 사용할 묘자리야. 언덕 뒤쪽은 파주 주민들 사용한다고 하던데

파주 주민들 자리도 따로 있군요현우가 뒤를 돌아보며 무순이야기에 말을 보탠다.

아버지 그래서 이산가족 찾기는 신청하셨어요?” 현우가 7월 중순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무순에게 묻는다.

아니, 안 했어무순이 북쪽에 시선을 고정한 체로 대답한다.

해 보시지 그러셨어요. 큰 고모라도 찾으실 수 있잖아요현우가 아쉽다는 듯 말하는 속도를 높인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 돌아가셨겠지. … … 큰 고모 남편이 인민군 높은 직급이었는데, 혹시 안 좋은 일 생길 수도 있고 해서무순이 말끝을 흐린다.

다음에는 해보세요, 분위기가 앞으로 계속 할 것 같던데요현우가 잔디에 있는 메뚜기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다음?’ “그래 생각해 보자무순은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생각하니, 울컥한 생각이 들었다. 신청서 서류 란에 신청인의 어머니 성명을 쓰도록 되어있었는데 무순은 어머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비록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보려 해도, 어머니의 이름을 모르다니,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다른 이에게 밝히기도 부끄럽다. 무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 이름을 모르겠더라고 ~~” 무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현우는 갑작스러운 무순의 감정 변화에 당황했다. 그러고는 예전에 봤던 호적등본 할머니 이름 란에 강씨라고 적혀 있어 의아해했던 일을 떠올랐다.

무순과 현우는 한동안 말없이 경모공원 언덕에 서 있었다. 7월의 석양은 남과 북을 똑같이 내리쬐고 있었다. 한줄기 바람이 두 사람 곁을 스치고 지나 언덕 아래로 달린다. 높게 떠 있는 구름 밑으로 소쩍새 한 마리가 유유하게 날개 짓을 하며 활승을 한다. 사람들이 정해 놓은 경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가고 푼 곳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시원하게 북쪽으로 향하던 소쩍새는 북쪽 하늘에서 석양 빛을 받아 붉은 점이 되더니 사라졌다.

<2부 끝, 3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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