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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2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2_12

by 조랑말림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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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도, 양식업

텅 텅 텅 퉁어선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무순의 귀 전을 때린다. 오래된 안강망 어선을 개조한 듯 보이는 박흑수 사장의 배는 3월의 잔잔한 남해 바다를 거침없이 가르며 나아간다. 시원한 바다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도 잠시, 멀미약까지 먹은 무순의 배 속이 울렁거린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여수에서 출발한지 1시간가량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잠이 쏟아진다. 선장실 뒤편에 마련된 선원실로 찾아 들었다. 선원실로 들어가는 무순을 바라보던 박사장이 괜찮냐고 묻는다. 무순은 씩 웃으며, 손을 한번 휘 젓고는 선원실 바닥에 몸을 뉘었다. 무순의 나이 54, 북쪽 산촌에 있다가, 남쪽 섬 마을까지 가다니, ‘인생 참 길다이런 생각을 하며 누워 있는데, 실제 나이는 무순보다 2살 아래지만 보이기는 10살 정도 많아 보이는 박사장이 선원실에 고개를 들이밀며 말한다. “눈 좀 붙이세요, 1시간 반 정도는 더 가야 되니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고, 무표정한 검게 그을린 얼굴로 박사장이 다정스럽게 이야기한다.

박사장의 목소리가 낮게 깔려 있어 믿음이 간다. ‘보기에는 험악해 보여도 심성은 착한 사람이겠지무순의 경계심이 엔진 떨림과 함께 잠 속으로 묻힌다. 선실 바닥이 엄마의 가슴처럼 아늑한 느낌을 준다.

 

해밀도는 서도, 동도, 가도 이렇게 3개의 섬이 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박사장이 하는 가두리 양식장은 3개의 섬 중 서도 앞 바다에 있어, 배로 약 10분 정도면 나가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여기 이 치어 들은 부산에서 가져온 거에요. 부화해서 70일 정도 지난 놈을 가져와서 이제 한달 정도 지난 겁니다. 이쪽은 6개월된 거고요. 내년 7월쯤이면 판매 해야죠박사장은 사각형 뜸틀을 발로 구르며 말을 이어간다. “이게 육지에 있는 밭이랑 같아요. 이런 거 여러 개 갖다 놓으면 큰 돈 만질 수 있는 거지, 이게 돈 찍어내는 기계에요 기계”. 박사장이 무순을 보고 씩 웃는다. 무순도 박사장을 따라 빙긋 웃어 보인다. “그럼 1년 반 이후에나 돈이 들어오겠네

“1년만 참으면 됩니다. 1년 지나면 좀 자잘한 거 팔아서 운영비 하고, 그 뒤부터는 앉아서 매달 천만원씩 들어온다고 보시면 틀림없어요박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저 사각 가두리 설비 하나 더 놓는데 500 달라고 하는 데, 내가 400으로 후려 놨으니 최사장은 걱정 말아요, 1년만 고생하고, 그 뒤에 하나씩 늘려가면 됩니다.” 박사장이 참돔 치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이씨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간다. 그의 행동에 거침이 없고 자신감이 느껴진다. 무순은 자신도 모르게 희망이 가슴 속에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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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들 있겠지

아버지는 염려들 하는 덕으로 편안히 지내고 있으니 안심하여라.

이곳은 그림에서 보는 것 같이 경치 좋은 곳도 있다.

아직 섬 생활에 익숙하지 못해서 어수선한 감이 있으나, 곧 안정 될 것이다.

서로 화합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건강하게 지내거라

22, 23일경 올라갈 예정이다.

 

                                               86. 5. 6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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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는 아버지의 엽서를 받으니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가 없으니 엄마가 집에 조금 더 오래 머물다 가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금옥은 빚쟁이가 최무순 집으로 거의 찾아오지 않는 것을 알고 나서는, 4일 내내 무순집에 머물기도 했다. 그러고는 혹시 몰라 짐을 싸 들고, 식당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해결하는 부천의 한식당 뒷방으로 도망치듯 몸을 옮겼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경찰이나 빚쟁이를 만날 까봐 마음을 졸이며 다닌다. 2주 정도 부천 한식당에서 정신없이 잔반과 설거지 처리를 하고 나면 현수, 현기, 현우가 맘에 걸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별 탈없이 커준 것이 대견스럽고, 중학교를 모두 지나 육아에 대한 부담도 많이 없어져 홀가분하다. ‘큰 빚 두개만 더 정리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겠지금옥은 자신이 관리하던 곗돈을 높은 수익 나는 곳에 투자해 주겠다며, 2천만원을 가지고 사라졌다가, 2년전에 가까스로 다시 연락이 된 오영자를 만나러 가며 다짐한다. ‘매달 50만원씩 달라고 해야겠어, 그럼 1년 반 정도면 해결될 텐데금옥은 종종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박사장 태풍이 온다는 데, 돔을 싣고 나가야 하지 않겠어

무순은 뉴스에서 태풍 셀마가 해밀도 앞을 지나 내륙으로 상륙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박사장과 전화 통화를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최사장님 그 태풍 일본으로 간답니다. 걱정 마세요. 지금 돔 판매처 알아보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쇼’’ 박사장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언제쯤 들어올 꺼요?” 무순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결정되면 전화 드릴께요. 끊습니다

무순은 수화기로 전화통을 내려 치려다 말고 방 바닥에 놓았다. ‘별일 없겠지, … … 참돔 판매처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니, 알아보고 있다는 거는 무슨 말이야수화기를 다시 들어 전화기에 올려 놓으며, 무순은 마음을 다 잡았다. ‘이번 태풍이 지나가면 내가 여수로 나가서 판매처를 알아봐야겠어, 최사장 이 사람은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아 빨리 와, 뭔 일 있어화투를 돌리던 박사장 친구 하씨가 박사장을 보며 이야기한다. “참나! 오지도 않을 태풍 걱정을 하고 있어, 서울에서 온 샌님이박사장이 담배를 하나 물고 불을 붙이며 대답한다. “돌려, 돌려

그 양식업 하러 온 돈줄하씨가 이죽거리며 둘러앉아 있는 4명에게 화투 패를 나눈다.

박흑수는 3일째 목포에 있는 도박판에서 먹고 자며 화투를 하고 있었다. 참돔은 무순과 이씨가 잘 키우고 있고, 일주일 후에 잘 자란 참돔 100kg을 자신의 배에 싣고 나와 2백만원 받고 여수 공판장에 넘기기로 했으니 모든 일이 잘 돌아간다. 판매처에 보여준다며, 3일 전 가지고 나온 5킬로짜리 참돔 10마리를 여수 횟집에 넘기고 받은 40만원으로 목포에 다시 왔다. 지난번 홀라당 날려 먹은 20만원을 어떻게 든 설욕하려 했는데, 3일만에 40만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박사장은 담배 연기를 후 뿜어내며, 화투장을 엄지로 살며시 내린다. ‘3,7 망통’ “아 전화를 받았더니 재수가 옴 붙었네박사장이 화투장을 던지며 말한다 죽어

 

쉬이잉 ~ 쉬이 쉬이~~

바람이 세차게 분다. 태풍 셀마가 해밀도로 올라오고 있다.

무순은 점점 거세지는 파도와 바다 위에 위태롭게 떠있는 양식장을 방파제에서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빗줄기와 바람이 빨리 내려가라는 듯 무순이 입고 있는 우비를 때린다.

최사장님 위험해요. 들어가죠무순을 따라 나온 이씨가 재촉하듯 이야기한다.

괜찮을까요?” 무순이 방파제 밑으로 걸음을 옮기며 묻는다.

내파성이라, 부자도 잘 묶어 놨으니까, 떠내려 오는 것들만 없으면 좋겠는데,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야 죠!” 이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어 보였다.

박사장한테는 연락 온 거 없어요?” 무순이 다시 한번 더 양식장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파도 자면 들어오겠죠, 뭐 워낙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는 사람이라… …” 이씨가 말꼬리를 흐린다.

태풍은 무서웠다. 무순은 밤새 한숨도 잠을 못 이뤘다. 창문은 깨질 듯 흔들리다가 잠잠해지고 다시 세차게 흔들리기를 반복하고, 바람 소리는 마치 아기 비명 소리처럼 날카롭게 무순 귀 속을 파고 들었다.

 

아침이 되자 하늘은 언제 비바람이 있었냐는 듯이 맑게 개었다.

무순은 일어나자 마자 한달음에 양식장으로 갔다. 다행히 내다 팔 참돔 어망은 무사했다. 여기 저기 부유물이 엉켜 있었으나, 찢어지거나 부서진 곳은 없었다. 문제는 2달전에 사온 치어가 있는 그물이 태풍에 떠 밀려온 나무와 쓰레기 때문에 구멍이 나서 안에 있던 치어가 모두 없어져 버린 것이다.

피해를 본 손해는 치어 구입비와 그물 수리비 등으로 120만원 정도였으나, 무순은 손실 금액 보다도 박사장에 대한 서운함이 온 마음을 덮고 있었다.

어떻게 전화 한통을 안 하지박사장에 대한 실체를 알아버린 것 같아 무순은 더 이상 박사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태풍이 지나간 4일 후 박사장은 안강망 어선에 참돔 배합사료를 싣고 나타났다. 본인의 배가 여수에서 태풍에 쓸려갈 뻔했다며, 물어보지도 않는 이야기를 떠벌리며, 무순의 눈치를 본다.

무순은 이씨가 나서서 태풍 때문에 피해본 내용들을 박흑수에게 설명해 주는 것을 그저 듣고 만 있었다. 무슨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무순이 해밀도 양식업을 정리하고 떠난 것은 그로부터 2달 뒤로, 해밀도에 들어 간지 꼬박 19개월이 지난 후였다. 얼추 계산하니 17백만원 정도 손해를 봤다. 큰 돈을 꿈꾸며 들어갔지만, 통장 잔고만 줄었다. ‘동업은 어려워하며 스스로 위안도 해봤지만, 잘 모르는 일을 사람만 믿고 시작한 자신이 너무 어리석어 보였다. 심지어 그 사람도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여수에서 강남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 차창을 통해 바라보는 가을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아름다운 가을 풍경 위에 겹쳐지는, 나이 들고, 돈 없는 초라한 자신의 얼굴이 서글프다.

국도를 지나 고속도로에 들어선 버스는 무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9월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전속력으로 아스팔트를 달린다. 엔진 소리는 바람 소리와 타이어 소리에 묻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12화 끝, 13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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