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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2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2_2

by 조랑말림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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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과 단지

 평안북도 강계군 화경면 고인동. 최무순의 고향이다.

 북쪽에는 강남산맥, 동쪽에는 낭림산맥, /남쪽에는 적유령산맥이 둘러싸고 있어, 사방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 강계다. 해가 산에서 떠서 산으로 지며, 내륙 깊숙이 자리한 고원지대는 이른 아침마다 뼈가 시릴 정도의 추위를 여름 한때를 제외하곤 일년 내내 지속시킨다.

 강남산맥과 적유령산맥 사이를 독로강이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가며, 이 독로강은 숭적산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흐르는 화경천과 합류한다.

 이 화경천 주위에는 하천변에 퇴적하는 토사가 쌓여 이루어진 평야가 있어 논농사가 가능했는데, 이 평야의 9할이 최무순의 아비 최응수의 것이었다.

 최응수가 그 아비한테 물려 받은 이 땅은 최씨네가 12대째 소유하고 있는 평야로, 강계 지역 쌀 생산량의 거의 3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최응수는 '큰아반'으로 불렸는데, 최씨네 손이 늦고 귀하여 항렬이 높았으며, 고인동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씨와 강씨 성을 가지고 있는, 최씨 / 강씨 집성촌이기 때문이었다. 최무순의 어머니도 강씨 였으며, 만석꾼 최응수의 첫째 아들이 어린 나이에 병사한 것도, 집성촌에서 가끔 나타나는 유전적 질환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확인된 것은 없었다.

 최무순은 최응수의 다섯번째 자녀이다. 큰형과 셋째 누나가 병사했던 관계로, 터울이 많이 나는 두 누나 아래인, 12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큰누나와 나이차이는 9살이었고, 작은누나와의 나이 차이도 5살이었다.

 최응수는 아들이 태어나자 너무나 기뻤다. 땅을 물려 주기 위해,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 데릴사위라도 들여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무순이 태어나 주었다. 얼마나 경사인가. 곳간에 있던 쌀을 꺼내, 떡을 하고 이웃과 사촌들에게 돌렸다.

 최무순은 그렇게 만석꾼이 될 운명, 귀하게 대접받을 운명을 타고 났다. 그러나 시대는 그 운명을 그에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1930년대는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일제강점기였다.특히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1년 이후로 일본은 조선을 병참 기지화하며, 민족말살통치를 펼쳤다. 이에 따라 일본군과 한국 독립 세력간 전쟁이 격화되던 시기였으며, 윤봉길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가 있었던 해가 최무순이 태어난 1932년이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인들도 황국신민이므로 황국신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무순이 소학교를 입학할 때, 일본 이름이 없으면, 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으므로 무순과 그의 아비 응수를 포함한 최씨네도 창씨개명을 했다.

 

사이모토 준코, 앞에 나와서 황국신민서사를 선창해라무순의 소학교 1학년 담임 선생인 야마다 선생이 날카로운 지휘봉을 휘두르며, 무순을 쳐다본다.

무순이 머뭇거리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린다 사이모토 준코

순아 너 잖아, 나가동네 친구인 근창이 무순 옆을 치며 말한다.

누가 일본말 말고 다른 말을 사용하나?!, 황국신민은 내선일치 정신에 따라 우리말(일본말)만 사용한다. 알겠나?” 야마다 선생이 지휘봉으로 교탁을 두드리며 말한다.

무순은 일어나서 교실 앞에 섰다.

소레노 이치로 시작하는 황국신민서사를 무순이 선창하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따라한다.

 

소학교를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창이가 무순 옆을 치며, 장난을 건다.

순아 언제 다 외웠데, 잘 하던데 보지도 않고

“… … “ 무순은 말이 없다.

순아 우리 물고기 잡으러 갈까? 어제처럼

물이 아직 차던데, 내일 아바지, 오마니하고 선산 가야 해서, 오늘은 집에 일찍 가야해

아 내일이 제삿날이야?”

무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제 큰아반하고 영길이 아반하고 꿩 사냥 다녀왔구나? 송골매가 몇 마리나 잡았어?” 근창이가 얼굴을 들이밀며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세마리 잡았다 던데, 영길 아반 하나 드리고, 아바지가 두마리 가져오셨다고

나도 크면 송골매 데리고 꿩 사냥 가고 싶은데, 나중에 영길 아반 한테 매 한마리 잡아달라 해야겠다. 영길 아반이 매 잡는 선수지인구가 길가 돌을 들어 멀리 던지며 슬며시 웃는다.

 

어느새 무순은 집에 다 왔다. “창아 조심해서 가” “그래

무순의 집은 기와 한옥으로 왼쪽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곳간이 있는 별채와 화장실은 따로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대청 한가운데 가미다나(가정이나 사무실 등에서 가미<일본신>를 모시기 위한 제물상이다. 일종의 소형 신사(神社)라고 볼 수 있다.)가 눈에 들어온다. 무순은 왠지 가미다나가 보기 싫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다녀왔니, 친구들하고는 잘 지냈구

오마니, 왜 난 이름이 두개야, 그냥 학교에서 쓰는 이름 집에서 쓰면 안돼?”

무순은 일본 이름을 한번에 못 알아 들었던 것이 집에서 무순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네 이름은 무순이야, 일본 이름은 학교 들어가려고 지은 거고, 학교에서만 쓰는 거야. 내일 아바지하고 천불봉에 가야하니 밥 먹고 준비해야지.”

무순의 엄마, 강희정은 무순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무순은 발을 쿵쿵 구르며, 방으로 들어갔다.

 

숭적산, 백암산과 함께 적유령산맥에 있는 해발 1,600미터가 넘는 천불봉에는 최씨네 가족 선산이 있다. 6대이후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외 가족들을 모신 곳으로 무덤 수만 40기가 넘게 있다. 오늘은 최응수 아버지의 기일이라, 최응수 동생 최응만 가족이 같이 모였다. 응수 여동생 현미는 남쪽 대전으로 시집을 간 터라모인 인원은 14명뿐이다. 응만이는 일찍 결혼해 2 2녀가 있었으며, 그 중 장남은 벌써 결혼하여 사내아이 둘을 낳았다. 응만이는 벌써 손자가 있는 것이다. 그 손자들은 무순과 5 ~ 6, 밖에 나이 차이가 없었다.

음식을 차리고, 절을 올리고, 서둘러 산을 내려갈 준비를 했다.

4월 천불봉 새벽은 아직 춥다.

아이들을 무명옷으로 꽁꽁 싸매고, 올라왔지만, 춥다고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응수가 무순과 함께 산을 내려오며 말한다.

"순아, 순이가 나이 좀 차면 저 꼭대기 계시는 컬바지(할아버지) 산소도 가야지"

무순은 아비의 시선을 따라 선산 위를 쳐다봤다. 빽빽한 침엽수 사이로 돌들이 언뜻언뜻 보이고, 산길 옆으로 무덤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가요?"

"소학교 졸업할 때쯤이면 갈 수 있겠지"

무순은 아비의 손을 잡고 산길을 내려왔다. 응수의 왼손은 평소에는 장갑을 끼고 있어 약지가 짧은 것을 확인하기 힘들었으나, 장갑 위로 손을 잡으니 빈 공간이 느껴졌다. 무순이 손마디가 짧아 비어있는 장갑을 장난 삼아 꼼지락 거린다.

"그 손 마디는 저 산 위에 있다" 응수가 중얼거렸으나, 무순은 그 말뜻을 알아 듣지 못했다.

 

19093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최응수와 아비 최병익은 독립운동가 김기용과 함께 호롱불 옆에 앉았다.

최병익은 아들 응수를 고향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선생님, 응수 이놈은 집안을 돌봐야 하는 놈입니다. 제발 제발"

"아바지" 응수가 목청을 높인다.

"최동지 흥분하지 말고" 김기용이 응수의 팔을 잡는다.

"선생님 제가 돈을 좀 가져왔습니다. 필요한 곳에 써주세요"

병익은 곳간에 있던 쌀을 모두 팔아 마련한 러시아 돈 200루블을 품에서 꺼내 놓는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돈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병익은 흐느끼며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최동지가 정하시게, 이렇게 간곡 하시니, 조직을 이끌어 가려면 뒤에서 조력하는 사람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김기용은 200루블을 들어, 어두운 곳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건네며 일어 선다.

 

자신의 왼쪽 약지 손가락이 든 작은 항아리를 들고, 아비 최병익과 함께 응수가 고향집으로 돌아왔을 때, 응수 나이는 22살이었다. 그 혈기 왕성한 젊음을 산촌 구석에 잡아두기 위해 병익은 곳간에 모아둔 곡식을 다 사용했다.

응수는 단지동맹에 참여한 단지회의 일원이었으나, 러시아까지 찾아와 만류한 아비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가문과 땅을 지키는 것이 명분이었으나, 응수의 마음에는 조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집안에 독립운동가가 있으면, 집은 풍비박산되고 그 집 땅은 모조리 일본이 빼앗아 갈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일본에게 빼기는 것 보다, 그것을 지켜 조직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응수는 손가락이 든 항아리를 선산 제일 꼭대기 할아버지 무덤 옆에 묻으면서 서러움에 절규하듯 펑펑 울었다. 그 서러움은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한 것에 대한 서러움인지 아니면 동지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서러움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응수는 조상이 주신 땅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눈물을 닦았다.

 

<2화 끝, 3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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