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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2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2_1

by 조랑말림 202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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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유언

 최무순은 죽었다.

2003712월 오전 410. 어두운 하늘 군데군데 먹구름이 몰려있고, 추적추적 비 내리는 여름 새벽녘은 고요한 호수처럼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최무순은 비로소 삶에서 깨어나서 죽음으로 나아갔다. 의사의 사망선고를 듣고 있자니, 지나온 날들이 부질없다. 나이 60이 넘어 서부터는 가족에게 아픈 모습,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최대한 깔끔하게 인생을 마무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떠날 줄은 몰랐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인공호흡기를 기도에 꽃아 놓은 후로는 말도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마지막을 맞이했다. '내 장례식에 부를 친구들 연락처를 수첩에 적어 놓았는데,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다가, 남겨진 이들의 몫이려니 하며 뒤 돌아 제 갈 길을 찾아가려 한다.

막내 현우가 엉엉우는구나. 둘째 현기도. 첫째 현수는 무엇에 화가 났는지 벽을 보며 숨만 씩씩거리고. 아내 금옥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아이고, 아이고하는구나’. 마지막 말을 남기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 최무순 눈가에 남은, 식어버린 눈물이 돌아서려는 무순의 마음을 잡는다.

그래 맘이라도 전하고 가자

무순은 메모지를 찾아 들고는 아내와 세 아들에게 마지막에 전하고 싶은 말들을 적었다. 그 맘이 전달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마지막 심정을 한풀이 하듯 한자한자 꾹꾹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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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미안하고, 고마워.

이제 좀 편안하게 살게 되나 싶었는데,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짧았구려.

고향 떠나와 외롭고 쓸쓸했는데, 까탈스러운 나를 받아주고 가족을 꾸려줘서 고마워.

살면서 좀더 잘해 줄 걸, 돈이라도 많이 남겨 줄 걸 하는 후회도 있지만 나 없는 동안 현수, 현기, 현우하고 잘 지내게.

인생이 짧다고들 하는데, 짧기 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 같소.

아쉬움 남기지 말고, 편안 마음으로 지내시게.

나의 허물, 잘못 모두 나와 같이 묻고, 좋은 일, 착한 일과 함께 남은 시간 보내시게

내 친구들 연락처는 내 책상 오른편 서랍에 있으니, 연락 부탁하고.

여보 고마웠어.

 

현수, 현기, 현우야

미안하구나, 같이 좋은 곳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었는데.

형제끼리 서로 잘 섬기면서 효제를 다 하거라.

절대 형제간에 돈 거래하지 말고.

 

현수야

너는 담배 끊고, 아비도 간암 수술 받고 담배를 끊었지만, 진짜 백해무익이다.

첫째로 부담감 있을 텐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감싸고 또 감싸면서 동생들 잘 보살펴 주고.

가정이 편안해야 하는 일이 잘되는 법이니, 가정을 잘 꾸리고, 소홀하지 않도록 노력해라. 건강도 잘 돌보고

 

현기야

너무 마음 쓰지 마라. 너와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바둑 둘 때가 즐거웠다.

욕심 줄이고, 화내지 말고, 형하고 엄마 잘 살피면서 지내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 건강을 잘 돌보고, 베풀고 살 때 비로서 큰 부자가 되는 것이니 베풀고 또 베풀며 살아라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드물고, 내 맘에 맞는 사람 없어도 그 속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니 참고 또 참고 살아라

 

막내 현우야

미안해 하지 마라. 아버지도 좋은 기억만 갖고 가마.

좋은 아버지, 좋은 스승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대견하게 잘 성장해 주어서 고맙다.

너에게 좋은걸 많이 해주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 구나.

너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 맘껏 하며 살아라.

엄마와 형들 잘 챙기고,다른 사람들 배려하면서 운동도 자주하고.

 

여보 그리고 현수, 현기, 현우야

다른 이의 잘못 보다는 자기 자신의 잘못을 꾸짖으면서, 하루하루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기 바란다. 행복해라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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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순이 남은 마음을 모두 풀어내자. 메모지는 화르륵타올랐다.

 가족들 마음에 닿았을까?’ 무순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하얀 터리풀 밭, 초록 언덕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디선 본 듯한 산자락이 햇살을 가려주고,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물길 따라 눈길을 옮기니, 멀리 독로강이 보인다. 고향인가?

 아버지, 어머니무순은 뛰고 또 뛰었다.

 

<1화 끝, 2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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