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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2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2_7

by 조랑말림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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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병, 후퇴

, ,

기습이다. 모두 일어나!! 이등중사 심하섭이 자고 있는 학도병을 흔들어 깨운다. 무순은 부시시 눈을 떴다. 꿈결에 고향 언덕에서 엄마 손을 잡고 어디론가 내려오고 있었던 것 같은데~~

, 수류탄인지 박격포인지 알 수 없는 폭발음 소리가 바로 앞에서 터지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린다. 화들짝 몸을 일으켜 옆에 있는 학도병 동기인 준기를 찾았다. 준기는 몸을 웅크린 체 자고 있다.

준기야, ! !”

 전준기가 깜짝 놀라며 벌떡 몸을 일으킨다. “무슨 일 이야

 몰라, 나가자

준기와 무순은 M1카빈을 손에 들고 막사를 뛰 쳐 나갔다.

 후퇴하라, 후퇴, 본진으로

심하섭 중사가 차가운 한기가 느껴지는 어둠 속에서 학도병과 사병들에게 소리친다. 학도병과 국군들이 우왕좌왕하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폭발음 반대로 내달리고 있다. 산등성이는 누가 불을 내었는지 아니면 포탄에 불이 붙었는지 붉은 빛이 열기를 내뿜고 있다. 메케한 산나무 타는 냄새와 연기가 어둠과 함께 어제 학도병 100여명과 제2연대 7백여명이 장악한 운산 북방 10km 지점인 구봉산 자락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어제 구봉산 자락에 막사를 치고, 진지를 구축할 때만 해도, 무순은 고향에 금방이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앞에 있는 적유령산맥만 넘으면 고향이 아닌가마치 고향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콧노래도 나왔다.

사실 무순이 학도병에 자원 입대한 이유도, 인민군만 몰아내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순은 인천에서 전쟁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근창이 가족과 함께 대구로 향하는 피난길에서 학도병 지원을 독려하는 학생 무리에 합류하여 수원에서 학도병에 지원한 것이다.

 

어디선가 꽹과리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수류탄이 준기와 무순 뒤에 떨어진다. 준기와 무순 몸이 살짝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땅바닥으로 꼬꾸라진다. 무순의 왼쪽 다리가 찌릿하며 무엇인가로 쑤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으나, 무순은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준기를 부축하며 혼신을 다해 산 기슭을 뛰어 내려왔다.

한참을 뛰고 또 뛰었다. 멀리서 동이 터온다.

운산 읍내 쪽으로 들어서니, 학도병과 2연대 소속 군인들이 보인다.

다들 무사히 내려 왔으려나?’ 무순이 잠시 학도병 동기와 군인들 걱정을 하고 있던 그때 심하섭 중사가 무순을 노려보며, 소리친다. “최무순 개인화기 어디 있나?”

무순은 손에 있어야할 M1카빈 소총이 없는 것을 알아채고는 깜짝 놀란다.

 ~ 무순은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무순 너 다리에 피가 ~” 준기는 왼쪽 허벅지에서 난 피가 신발까지 적신 무순을 데리고 의료진이 있는 막사로 향했다.

 자 파편은 제거 했고, 봉합은 잘 되었으니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왼쪽 다리를 조심하게의료진 막사에 있던 군의관은 무순 왼쪽 다리를 붕대로 감싸며 말했다.준기는 군의관 뒤에 내내 서있더니 무순을 보고 씩 웃는다.

 

평양까지 후퇴하라는 데, 중공군이 왔나봐!” 준기가 배식판을 무순에게 전달하며 이야기한다. “중공군? 중국 놈들이 여기 올일 없다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한방 당한 거지, 평양쪽으로 내려갔다가, 정비해서 다시 올라가 야지준기가 음식물을 입에 넣은 채로 이야기한다.

공산당 놈들은 중국이나 소련이나 한통속이라니까!!, 걱정하지마 우리한테는 미국 탱크가 있으니 금방 다시 올라가서 빨갱이 놈들 싹 몰아내 야지

무순은 그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금 고향에 갈 희망이 생기는 듯 했다. 그러나 왼쪽 다리가 찌릿하며 욱 씬 거리기 시작하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갈 수 있겠지, 갈 수 있겠지되뇌이는 혼잣말이 메아리처럼 가슴 속을 울린다.

 

최응수는 고향 땅을 돌려 받지도 못하고, 큰딸 집에 얹혀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처량했다. 일본놈들 한 테도 빼앗기지 않았던 땅인데, 로동당에게 이렇게 속절없이 빼앗기다니 황망하기 그지 없다. 고향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땅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고향으로 내려갈 면목이 없다. 어떻게든 해결을 하고 가야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던 차에 전쟁 소식을 들었다. 남쪽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래 옳다구나 잘 되었다. 여기 이놈들 싹 쓸어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인민군 상위인 큰 사위가 눈에 밟힌다. ‘큰 사위는 똑똑 하니 어디에서고 잘 적응하겠지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라도 빨리 남쪽 군대가 평양으로 밀고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만 싶은데, 들리는 소식이라 곤 인민군이 연전연승한다는 이야기뿐이다. 벌써 대구까지 내려 갔단다. ‘남쪽은 준비도 제대로 안하고 전쟁을 시작하는가싶어 울화가 치민다. 공산당 놈들이 조만간 통일된 조국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떠벌리는 것을 듣고 있자니 불끈불끈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답답한 마음에 방 바닥을 내리쳐 보지만, 예순을 넘긴 초로(初老)의 탄식에 관심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0월 초, 인천에 미군이 들어와서 서울까지 올라왔다는 소문이 평양에 파다하게 퍼졌다. 응수는 평양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주고 있던 상수리교회 이태수목사를 찾았다. 이목사는 어디서 들었는지 미군이 조만간 평양으로 들어올 터이니 조금만 기다리 자며 응수의 손을 잡았다.

 희망이 생긴 최응수가 큰딸 집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보이는 것은 큰딸 숙자가 분주하게 짐을 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옆에서 응수 부인 희정도 같이 돕고 있다.

 아바지 어디 다녀오세요?” 숙자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묻는다.

 뭐하는게냐?” 응수가 퉁명스럽게 물으며 방안으로 들어선다.

 총후퇴명령도 못 들었어요. 김일성 수상이 강계시로 수도를 옮긴다고 선언했어요.고향으로 가야해요숙자가 짜증인지 걱정인지 날 선 말투로 목청을 높인다.

난 로동당 놈들하고 같이 안 간다. 그놈들하고 강계로 가서 뭐 어쩌게!”

응수는 가로닫이 문을 닫았다.

여기 있으면 죽어요. 미군한테 모두 죽는단 말이에요숙자가 악을 쓰는데, 그다지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숙자도 아비 응수가 함께 피난을 가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았단 듯이 말이다.

숙자와 희정은 응수를 평양에 남겨두고 강계로 피난을 갔다.

최응수는 미군과 국군이 평양에 들어오자, 상수리교회 교인들과 함께 10월 중순 부슬부슬 비 내리는 대동강변으로 나가 만세를 외쳤다. 가지고 있던 금붙이와 패물을 팔아 상수리교회에 찾아온 군인들과 다친 사람들을 보살피는데 사용하고, 기도회, 부응회를 빠짐없이 참석하며 도울 수 있는 모든 일에 열심히 도움을 줬다. 이제 미군들과 국군이 자리만 잡으면 금방이라도 땅을 되찾고,고향으로 당당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품 속에 있는 땅 문서가 갑옷처럼 응수의 가슴을 단단하게 조여줬다

그러나 응수의 시련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평양을 탈환 한지 두달도 채우지 못한 12월 초, 미군과 국군이 평양에서 철수를 한 것이다. 응수는 미군과 국군이 빠져나가 버린 평양에서 어찌 해야할 지 몰라 상수리교회를 찾았다. 이목사와 몇몇 신도가 교회를 지키고 있었으며, 대다수 교인들은 가족과 함께 미군과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잠깐의 시련을 참고 견디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복을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목사의 목소리가 교회 천장에 닿았는지 쩌렁쩌렁 울린다.

 아멘남아있는 교인들의 음성이 낮게 가라앉는다.

응수는 살며시 교인들 사이에 앉았다. ‘그래 전쟁이니 전세가 유리할 때도 불리할 때도 있겠지, 참고 기다리면, 포기하지만 않으면, 다시 우리에게 기회가 있으리라’ “주여 보살펴 주소서응수의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교회 문이 벌컥 열리며, 12월의 한기와 햇빛이 교회 안쪽으로 빠르게 쏟아졌다.

모두 끌어내멀리서, 날카로운 남성 목소리가 들리더니, 인민군 복장을 한 군인들이 교회로 뛰어 들어와 이목사와 응수 그리고 교인들을 교회 앞마당에 끓어 앉혔다.

이자들은 미제 앞잡이로 조선인민을 배반하고, 조국 해방 전쟁을 방해한 자들이다. 즉결 처형하라

장교로 보이는 군인이 이목사에게 권총을 겨누자 마자 발사한다. 권총 소리와 함께 모신나강소총 소리가 연달아 울린다. 최응수는 그렇게 이태수 목사와 상수리 교인 4명과 함께 상수리교회 앞에서 죽임을 당했다. 19501215, 그때 그의 나이 63세 였다. 앞 마당에 쓰러진 그의 마고자가 벌어지며, 품고 있던 고향 땅 문서가 빠끔하게 삐져나왔으나, 이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7화 끝, 8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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