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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2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2_8

by 조랑말림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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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한 가정

 최무순이 김금옥을 처음 본 것은 19634월이었다. 무순이 경리장교로 중앙경리단에 배속 받아, 2년이 조금 지난 어느 봄날, 중앙경리단 외곽 경비를 맡은 헌병소대장 김수명 소령이 새로 들어간 집, 집들이를 하겠다며 평소 가깝게 지내던 북쪽 출신 장교들을 집으로 초대한 날이 무순과 금옥이 처음 만난 날이다. 금옥은 집들이를 하는 오빠와 올케를 도우러 오라는 오빠의 지시를 받고, 부엌에서 요리 하는 것을 보조 하고, 손님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는 일을 맡았다. 군인들이 모이는 자리라 가고 싶지 않았지만, 생활비며 용돈을 거의 큰오빠에게 의존하고 있는 입장에서 큰오빠의 말을 거절하기는 불가능했다. 김수명은 중앙경리단에 새로 전입 온 인사 장교 박대위와 여동생 금옥을 잘 연결해 볼 요량으로 박대위 옆으로 금옥을 자주 오가게 했으나, 왠지 금옥의 시선은 최무순 소령만 바라보는 것 같다.

최소령은 나이도 많고, 남쪽에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별루 없는 것 같은데, 하여튼 남자 보는 눈은 … …’

금옥은 무순을 보자마자 마음이 끌렸다. 검게 탄 얼굴에 아저씨 냄새 나는 군인을 상상 했었는데, 뽀얀 피부에 바짝 붙여 넘긴 가르마, 말쑥하게 다려 입은 군복까지, 손은 또 어떤가 고생 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것 같이 길고 하얗다.

정말 귀공자 같다금옥은 음식을 옮기며 힐끔힐끔 무순을 봤다.

무순도 그 시선을 느꼈지만, 별다른 감정을 갖지는 못했다. 그저 단촐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김소령이 부러웠을 뿐이었다. 김수명 소령이 무순보다 4살 형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김소령은 벌써 딸, 아들을 낳고 자리를 굳건히 잡은 것이 대단해 보였다. 무순은 고향에 계실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이렇게 단란한 가정을 보자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짠해 온다. ‘나도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을까?’

 

1963년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의장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해이다. 1961년 소장이던 박정희 장군이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이후로, 군인에 대한 처우도 많이 향상되었다. 무순은 1952년 시험을 통해 갑종장교로 임관하였고, 직업군인이 되었다. 19537월 한국전쟁이 끝나자, 병과를 포병에서 경리로 바꾸었는데, 경리 업무는 무순의 적성에 잘 맞았다. 수리에 밝아 회계 업무에 능했으며, 무엇보다도 차분하게 앉아서 숫자를 하나씩 맞추어 나가는 일들이 즐거웠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나랏돈 빼먹으려 달려드는 상관과 업자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떤 부대장은 무순에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진급을 위해 뇌물 자금 조달(군 예산을 이용해 비자금을 만드는 것)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무순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자, 무순의 평가 등급을 최하위로 주기도 했다. 다행히 비용 집행 관련 보고 자리에서 무순의 능력을 유심히 살펴 본 상급 부대 대대장의 추천으로 무순은 중앙경리단에 올 수 있었다.

중앙경리단에서의 생활은 평온했다. 학도병, 임관, 지방 배속 및 전출 등으로 13년을 정신없이 살아오다가, 서울 사무실에서 온전히 숫자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자 무순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이 본인에게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영화 어땠어요? 난 좀 지루하던데, 군인아저씨들이 너무 많이 나와요

금옥이 황태해장국을호호불며 이야기한다.

국도극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보고 나온 직후 무순과 금옥은 저녁 식사를 위해 근처 해장국 집에 왔다.

실감나게 만들었던데무순은 금옥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하며 답을 했다.

실감나요? 진짜 전쟁하고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학도병도 했었다면서요. 이야기 좀 해줘요. 총으로 빨갱이도 쏘고, 수류탄도 던지고 했어요?”

무순이 황태해장국집 안에 사람들을 한번 쭉 훑어보고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는 포병이라, 후방에 있어서, 영화 하고는 많이 달랐어

포병은 막 폭탄 쏘고, 터지고 그런거에요, 힘들지 않았어요? 무서웠겠다?”

하하 ... …” 무순은 무서웠겠다는 금옥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무순과 금옥은 을지로 뒷길 허름한 찻집 구석에 나란히 앉았다. 금옥과는 두번째 만남이라, 어색할 줄 알았는데, 금옥이 무순의 팔짱을 끼고, 다정스럽게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니 무순은 금옥에게 친근한 마음이 생겼다.

무순은 커피를 시키고, 금옥은 유자차를 주문했는데, 커피는 미군 전투식량 씨레이션에 들어있는 커피 맛이 난다. 무순이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데 금옥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말한다.

나 어때요?”

 무순은 예뻐하며 무심한 듯 툭 던졌는데, 가슴이 콩닥거림을 느꼈다.

 어디가 예뻐요? 좀 자세하게 말해봐요. 군인아저씨들은 말이 좀 짧아

 군인아저씨 많이 만나 봤나봐?”

 아니에요, 큰오빠가 군인이라 그런 거지, 남자 만난 적 없어요금옥이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약간 돌린다.

무순은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왼손은 금옥의 허리를 감싸고, 오른손은 금옥을 손을 잡을 채로 금옥에게 입맞춤을 했다. 금옥이 흠칫 놀라는 가 싶더니, 적극적으로 무순에게 다가온다. 무순이 금옥을 꼭 끌어안자, 금옥의 입에서는 열기 가득한 신음이 약하게 새어 나왔다.

 

 무순과 금옥은 1964년 가을 결혼을 했다. 둘이 만난 지 16개월이 조금 지난 후로, 본격적인 연예를 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무순이 대구 작전사령부로 발령이 난 이유도 있고, 서른둘을 넘긴 무순이 결혼을 서두른 이유도 있었다. 무순은 지금의 안정적인 상태를 결혼을 통해 보다 확고하게 유지하고 싶었으며, 금옥의 외형적이고 활달한 성격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금옥을 다른 이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이 무순의 마음을 안절부절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금옥의 집에서는 무순과의 결혼을 반대했다. 특히 금옥의 두 오빠는 신중하게 생각하라며, 금옥에게 여러 번 충고와 만류를 강하게 전달했으나, 무순에게 마음을 온전하게 빼앗긴 막내 동생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혼식은 아담하게 치뤄졌다. 하객 중 무순의 친척은 없었으며, 무순 군 동기, 중앙경리단에 근무하는 군인과 공무원들, 남쪽으로 피난 온 고향 친구들 몇몇 만이 참석했을 뿐이었다. 서둘러 결혼식을 마친 무순과 금옥은 신혼여행지인 온양관광호텔로 향했다. 둘의 앞날에 행복과 즐거움만 가득할 것 같은 9월의 은혜로운 햇살이 새나라 택시 안에 가득했다. 무순은 피곤했던지 택시를 타자마자 잠이 들어버린 금옥을 쳐다보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싱그러운 행복이 꿈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이 들자 갑자기 우울해졌다. 북쪽에 계시는 부모님께 자신의 결혼을, 자신의 아내를 알리지도 보여 드리지도 못하는 신세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전 까지도 온화했던 햇살이 따가운 바늘처럼 무순의 얼굴을 질렀다. 무순은 햇빛을 피해 몸을 돌리며 웅크렸다. 빠르게 도로를 달리는 택시 옆으로 추수를 앞둔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택시가 내는 바람에 휘청거린다.

 

<8화 끝, 9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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