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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3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3_3

by 조랑말림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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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Pixabay로부터 입수된 Cock-Robin님의 이미지 입니다.]

엄마, 같이 가. 엄마금옥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가 내리며, 눈을 떴다.

꿈인가?’ 하얀 옷을 입고, 5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은 채, 잰 걸음으로 앞서 가는 금옥의 엄마 이춘심의 모습이 금옥의 눈에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있다. ‘집에 가시나? 나도 가야 할 텐데, 돈을 챙겨서 가야지, 잠깐만, 내가 돈을 어디에 뒀더라금옥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는 바지 양쪽 주머니를 만져 봐도, 돈을 넣어둔 지갑이 없다. ‘어제 입은 옷에 있나옷장을 열어 바지를 하나씩 꺼내 바지를 살핀다. 옷장에 있는 바지며 치마를 전부 꺼내 확인해 봐도 지갑은 보이지 않는다. 서랍에 넣어 두었나, 옷장 밑 서랍과 화장대 서랍을 전부 뒤져봐도 없다. 망연자실해서 이불 위에 풀썩 앉으니, 방안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불 오른쪽에 옷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서랍들은 전부 하얀 속살을 들어내며 삐죽이 내밀어져 있고, 금옥이 버리지 말라고 소리소리 질러 치우지 못한 쓰레기통은 제 용량이 넘는 쓰레기들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힘이 빠진 금옥은 불을 켜 놓은 채 다시 자리에 누웠다. 가쁜 숨을 내쉬던 금옥은 금세 잠이 들었다.

 

엄마, 저 왔어요현우가 밝은 표정으로 금옥의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3월 초 토요일 오후에 현우가 엄마의 안부를 살피러 온 것이다. “어 왔어, 오랜만이네금옥이 누워있던 자리에서 앉으며 말한다. “지난주에도 왔었잖아요? 기억나세요.” “그래? ~~” 금옥이 현우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엄마! 방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창문 좀 열어 놓을께요현우는 금옥의 방에서 예전 외할머니 방에서 나던 것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몸 아프신 곳은 없으세요, 약은 잘 드시고요?” “아픈데는 없어, 약은 챙겨주는 거 잘 먹어금옥이 감정을 하나도 느낄 수 없는 사무적인 태도로 현우의 질문에 답을 한다.

이리 앉아봐금옥이 현우를 바라보며 금옥 옆 자리를 툭툭치며 말한다. “, 뭐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세요현우가 금옥 옆에 앉았다. “집에 가야 겠어! 여기는 못 있겠어! 저 놈들이 내 돈을 다 뺐어 갔어금옥이 남이 들으면 안 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춰 현우에게 말한다. “여기가 엄마 집이 잖아요. 어디로 가시게요?” 현우가 의아한 듯 묻는다. 당황한 듯 고개를 살짝 뒤로 뺀 금옥이 말한다. “엄마한테 가야지, 엄마하고 같이 살아야 겠어” “… …, 할머니는 돌아가셨 잖아요. 엄마의 엄마는 돌아가셨다고요. 저기 청계산에 모셨잖아요현우가 핸드폰 속에 저장되어 있는 외할머니(이춘심)의 무덤 사진을 금옥에게 보여주며 말한다. “작년 가을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큰형하고 같이 가서 벌초하는 데 힘들었어요, 그 옆이 외삼촌 산소고요, 엄마 큰 오빠요현우가 사진 왼쪽에 있는 김수명의 무덤을 가리킨다.

 죽었어? 아닌데 엊그제도 봤는데. 언제 돌아가셨어?” 금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묻는다. “내가 국민학교도 가기 전이니까, 40년도 넘었죠.” 현우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대답한다. 기운이 쏙 빠진 모양으로 금옥이 등 뒤로 손을 짚으며 중얼거린다. “죽었어 ~~, 그랬어 ~~”

 현우가 실망하는 듯한 금옥을 위해 화재를 돌리려고 묻는다. “엄마! 큰외삼촌, 그러니까 엄마 큰오빠는 언제 돌아가신 거에요? 난 전혀 기억이 없네

 큰오빠? 큰오빠!!” 금옥이 기억을 더듬는 듯 말을 삼키며 되 뇌인다.

 

 금옥보다 9살 많은 김수명이 뇌졸증으로 급사한 것은 1970년 시월 중순이었다. 김수명의 첫번째 아내 안숙희가 1966년에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지 4년만에 김수명이 죽자, 김수명의 첫째 딸 유미와 둘째 아들 윤석은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김수명이 죽기 2년 전에 재혼한 새엄마 박미진이 김수명의 어린 아이 둘을 맡아 기르기로 하였으나, 부산에 있는 친정집으로 가 자리잡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여, 이춘심과 유미, 윤석은 김수명의 장례를 마치고, 세간살이를 정리한 후에 신림동에 위치한 무순의 집으로 들어와 무순, 금옥 그리고 그들의 세 아들과 같이 살게 되었다.

 

 미안해요, 갑자기 식구가 늘어서금옥이 이제 돌이 갓 지난 현우를 재우면서 무순에게 말한다. 무순이 담배를 깊게 빨았다가 연기를 뿜으며 말한다. “미안하긴, 일이 그렇게 된 것을 어쩌겠어무순이 담배를 다시 깊게 빤다. “작은 오빠만 옆에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 … 유미와 윤석이는 6개월 정도 뒤에 부산으로 가기로 했으니 ~~” 금옥이 속삭이듯 이야기하다, 말끝을 흐린다. “미국가고 없는 사람은 찾아서 뭐해. 자자고무순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옆으로 돌아 눕는다. 금옥은 돌아 눕는 무순을 보니, 미안한 감정과 서운한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현우를 재우고 방에서 나와 부엌 정리와 문단속을 마친 금옥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마루에 있는 천 쇼파에 앉아 한동안 눈물을 쏟아내던 금옥은 돈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조금도 아닌 많은 돈이. ‘돈을 많이 벌어야지금옥은 이제 엄마도 집에 오셨으니 아이들 맡기고, 이불 장사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절박함이 통했을까? 무순 혼자 장사를 하던 때 보다, 금옥이 이불 가게에 나온 후에 매출이 3배나 올랐다. 사교성 좋은 금옥이 근처 상가 주인과 일하는 사람, 교회 사람, 현수 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연줄을 놓으며 이불 가게를 홍보 한 덕이다. 무엇보다도 밍크이불이라고 불리던 화학섬유 소재로 만든 극세사 이불이 유행하면서 밍크이불은 들여놓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다.

돈이 좀 돌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투자해 보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상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금옥을 중심으로 계모임을 만들었다. 유미와 윤석은 금옥과 같이 산지 8개월 후에 부산으로 내려갔고, 금옥은 유미와 윤석을 위해 쓰라며 새 올케인 박미진에게, 계모임 1번으로 탄 곗돈 90만원에 10만원을 붙여 100만원을 들려 보냈다. 이불 가게는 잘 돌아가고, 아들 셋은 잘 자라고 있으니, 금옥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찼다. ‘역시 돈이 있어야 돼.’ 금옥은 돈이 수중에 있으니,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해주고 대우해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어려움이 이제 모두 지난 이야기가 된 것 같아 가슴 한 구석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꽃길 같았던 날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은 곗돈을 불리기 위해, 집 지어 판매하는 권씨에게 투자한 3천만원 때문이었다. 복덕방 가계 주인의 친구 권씨가 금옥에게 접근한 것은 1974년 봄이었다. 집장사로 투자 순익이 최소 두배는 난다며, 투자를 권유한 권씨는 처음 받은 1천만원에 대해서 6개월간 원금 상환 1백만원과 이자 50만원을 꼬박꼬박 보내왔다. 이에 믿음이 생긴 금옥이 2천만원을 추가로 투자하자 그 뒤로 연락이 뚝 끊어져 버린 것이다. 당황한 금옥은 복덕방 가계도 찾아가고 권씨가 차렸다는 봉천동 사무실에도 가봤지만 권씨를 만날 수는 없었다. 돈을 가지고 권씨가 잠적한 것이 분명했다. 금옥 눈앞 하늘이 한순간에 샛노랗게 변해 버렸다.

 

금옥은 현우가 가고 없는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엄마가 죽었다니, 엄마가천장에 달려 있는 형광등이 무심하게 방을 밝히고 있다. 내일이면 금옥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방안 불빛 밑에 자리잡은 한기 가득한 처량한 마음은 기억할 수 있으리라.

금옥의 눈에 맺혔던 눈물이 한방울 떨어져, 베갯잇 위로 떨어졌다.

 

<3화 끝, 4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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