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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3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3_4

by 조랑말림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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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반지

[Pixabay로부터 입수된 kalhh님의 이미지 입니다.]

떠나야 할 그 사람, 잊지 못할 그대여, 하고 싶은 그 말을 ~ “라디오에서 펄씨스터즈의 떠나야 할 그 사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금옥은 셋째 현우를 출산한지 2개월 정도 지나니, 이제는 몸도 마음도 점점 가뿐해지고 있는 듯이 느꼈 졌다. 노래를 들으니 기분도 유쾌해지는 것 같다. “엄마 정리 그만 하시고, 이리 와서 귤 좀 드세요. 귤이 달아요금옥은 엄마 이춘심이 사온 귤을 까서 입에 넣으며, 부엌에서 정리를 하고 있는 춘심을 부른다. “집이 아주 좋아. 최서방이 고생했네!” 오늘은 춘심이 무순과 금옥이 새로 이사한 신림동 집을 처음으로 찾아온 날이다. “최서방 퇴직금 받은 걸로 지은 거지 뭐, 뒤쪽 땅은 팔지 말라니까. 돈 모자른다고 덥석 팔아버려서, 아깝네금옥이 귤을 까서 춘심에게 건네며 말한다. “최서방이 다 알아서 했겠지, 그 꼼꼼한 사람이 ~~.” 춘심이 귤을 받아 들고 집안을 다시한번 쭉 둘러본다.

작은 오빠는 잘 도착했데금옥이 미국으로 이민간 둘째 오빠 김영명의 안부를 묻는다. “잘 갔겠지, 숙부 계신 곳으로 갔으니춘심이 귤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쉰다. “걱정마요, 작은 올케가 야무져서 잘 살 꺼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 걱정이지, 뭐 미국간 사람을 걱정해요.

금옥의 아버지 김상근은 조선이 일제 치하에서 해방되기 1년전인 1944년에 죽었다. 금옥이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으나, 아버지의 유골함이 태극기에 싸여, 집으로 왔다는 기억만은 가지고 있다. 김상근의 아내 이춘심은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김상근에게 시집와서 평양북도 신의주에서 아이 일곱을 나았으나, 넷은 어려서 죽고 아들 둘과 막내 딸과 함께 살다가, 조선이 해방된 이듬해인 194612, 김상근의 동생 김상섭이 자리잡고 있는 서울 답십리로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충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춘심은 소련 군정과 노동당이 194611월 북쪽에서 본격적으로 종교 탄압을 시행하자, 서울 답십리에서 국민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김상섭의 집 근처인 답십리동으로 내려와 터를 잡은 것이다. 당시 시행되던 호주제는 남자만 호주가 될 수 있었으므로, 춘심은 호적에 아이들 아버지로 김상섭을 올려 놓았고, 이것이 1969년 춘심의 둘째 아들 김영명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갈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1965년 김상섭은 미국 이민법의 전문가 우선 조항을 이용하여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갔고, 이후 자신을 잘 따르던 영명과 그의 가족을 가족 초청 형식으로 미국으로 이민 올 수 있도록 조치해 주었다.

엄마, 점심으로 뭘 드실래요? 우리 국수나 말아먹을까?” 금옥이 기분이 좋은 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엌으로 향한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춘심은 업둥이로 들어온 2살된 갓난아이와 함께 떠난 영명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오르자 또 다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춘심의 마음에는 다른 이의 비위를 맞추거나 거짓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우직하고 고지식한 영명이, 먼 타지에서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 가득이다. ‘건강, 평안토록 지켜 주소서춘심은 간절함을 담아, 정성을 다해 기도를 했다. 창문 넘어 참새 두마리가 빠른 날갯짓을 하며 서로 부딪칠 듯 날아간다.

 

오빠? 작은 오빠! 왜 우리 놔두고 갔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금옥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김영명은 말쑥한 회색 정장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셔츠 차림으로, 아무 말도 없이 서서 금옥을 바라만 보고 있다. “오빠! 말을 해봐 왜 그랬어금옥이 목소리를 높이자 영명이 뒤돌아 천천히 걸어간다. 걸음이 빠르지도 않은데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금옥은 영명을 쫓아갈 생각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다리가 꼼짝 하지 않는다. 고개를 내려 발을 보니 발목에 밧줄이 칭칭 감겨져 있다. “오빠 기다려, 오빠손을 뻗어 밧줄을 열심히 풀어 헤치며 금옥이 외친다. 어느 정도 밧줄이 풀려 다리가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금옥이 발에 힘을 줘서 세차게 내딛는다. 이불이 풀썩 들리면서 금옥이 잠에서 깨어 났다.

 

작은 오빠는 어디 있어?” 금옥이 현수 앞에 앉아 물에 만 밥을 입에 넣으며 이야기한다. “작은 오빠? LA에 계시던 작은 삼촌! 돌아가셨잖아요. 7년전에. 유미누나가 재작년인가 한국 들어와 가지고, 이야기했잖아요. 치매 걸려 돌아가셨다고 ~ ~. 이름은 기억나세요. 작은 오빠 이름이 뭐에요?” 금옥이 식사하는 것을 바라보던 현수가 금옥에게 기억력 테스트를 하듯 퉁명스럽게 물어본다.

작은 오빠 이름?’ 금옥이 고개를 흔들며 몰라하며 대답한다. “기억해 보세요, ~” 현수가 운을 띄우자 금옥이 기억이 떠오른 듯 대답한다. “~!!, 죽었어, 벌써, 그랬구나금옥이 식사를 마쳤다는 듯 밥 그릇을 앞으로 쓱 밀며 말한다.

 

이거, 작은 처남이 당신 주라고 하던데무순이 하얀 손수건에 싸여 있는 금반지 두개를 금옥 앞에 놓는다. “… …” 금옥이 아무 말없이 반지만 쳐다보고 있자, 무순이 말한다. “작은 처남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이거 전해 달라고 하더라고무순은 아르헨티나를 갔다가 유미와 윤석이 있는 뉴욕과 김영명이 살고 있는 로스엔젤레스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직후였다. “작은 처남이 그 뉴욕에 있는 만기, 만식이 사촌들 하고 사이가 틀어졌는지, 뉴욕에 한 5년 있다가, LA로 갔더라고. 처남이 작은 슈퍼마켓 같은 거 하던데, 사는 데는 지장 없나 봐, 딸도 다 커서 대학생이고.” 무순이 나긋나긋하게 금옥의 눈치를 보며 말한다. “미안하다고 해요? 참 편하네금옥은 별 관심 없다는 듯 금반지를 옆으로 밀어 놓으면서 퉁명스럽게 말한다. “한번 보면 좋겠다고 하던데, 자기들은 움직이기 어려우니까, 당신 가능하면 LA에 같이 오라고, 처남이 기침을 많이 하더라고, 천식 같던데 풍토병이라고 하면서 ~~” 무순은 금반지를 손수건에 다시 싸서 화장대 서랍에 넣었다.

 

금옥은 온전하게 펴지지 않는 허리를 앞으로 구부린 채로 화장실을 나오고 있었다. 방안을 둘러보니 지저분한 쓰레기가 여기저기 놓여있다. ‘왜 청소를 안 하는 거야?’ 혼잣말을 하며 쓰레기를 한 곳으로 모으고 있는데, 열려 있는 화장대 서랍 안쪽에 하얀 손수건이 눈에 들어온다. ‘뭐지쓰레기를 모으다 말고 손수건을 꺼내 들자 금반지 두개가 서랍 속으로 또르르떨어진다. 손으로 주워 들어, 왼손 약지에 끼워보니 좀 작아서 들어가지 않는다. ‘누가 준거지? 두개나이런 생각을 하며 이불 위에 앉아 차분히 기억을 더듬어 봤으나, 금반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반지를 보고 있으니 서운한 감정이 밀려와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서둘러 반지를 손수건에 싸서 화장대 서랍 속으로 던져 놨다.

오늘 유독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며, 금옥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창 밖은 겨울을 지나, 따스한 4월 초, 봄 아침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으나, 금옥의 마음은 아직 봄을 맞이하기에는 이른, 차가운 한기로 굳어져 있는 듯 보였다.

 

<4화 끝, 5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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