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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가족 이야기_소설/최씨네 가족 이야기_3부

최씨네 가족 이야기 3_6

by 조랑말림 2023.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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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자락을 걸으며

[Pixabay로부터 입수된 Smim Bipi님의 이미지 입니다.]

엄마,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현우가 금옥을 보며 묻는다.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 듣겠어!” 금옥이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시킨 채 대답한다. “, TV 좀 꺼봐현우가 핸드폰으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현수를 보며 말한다. “TV는 왜?” 현수는 조금 떨어져 있는 텔레비전 리모컨 쪽으로 팔을 벋으며 이야기한다. “치매 걸리신 분들 한테 TV가 좋지 않다고, 그 치매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하더만

현우가 다시 금옥을 보며 묻는다. “뭐 드시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있으세요?” “… …” 금옥이 고개만 양 옆으로 흔들 뿐 대답이 없다. “잠은 잘 주무시고요?” “, 잠은 잘 자현우의 물음에 금옥이 현우를 빤히 쳐다보며 대답한다. 현우가 현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묻는다. “요즘도 새벽에 일어나셔서, 이방 저방 다니세요?” “아니야, 그 패치 붙이고 나서는 많이 좋아지셨어!” 현수가 핸드폰에서 눈을 때며, 현우에게 대답한다. “다행이네, 그 알츠하이머 패치가 효과가 있구만. 엄마! 큰형이 붙여 드리는 패치 계속 붙이셔야 돼요? 알았죠!” 현우가 금옥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놓으며 말한다. “그래, 큰 얘가 약 잘 챙겨줘, 잘 먹고 있어. 걱정 마!” 금옥이 현우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신기하다는 듯 현수가 금옥과 현우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너 한테는 이렇게 잘 이야기하는데, 나한테는 왜 그렇게 화를 내시는지, 참나금옥은 현수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듯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한다. “날이 많이 풀렸지?” 현우는 금옥의 이야기를 듣고 그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요즘 현우가 통 기운이 없어 보이던데 무슨 일 있어요?” 금옥은 무순이 방금 끝낸 저녁상을 치우면서 이야기한다. “현우? 아마 유학 가는 것 때문에 그럴 꺼야! 미국 유학 가는 비용 달라고 해서, 군대 마치고 가는 게 좋겠다고 했거든무순이 텔레비전을 끄고, 신문을 집어 들면서 이야기한다. “요즘 주식도 상황이 좀 그렇고, 미국 유학가면 군대를 안 가려고 할 것 같더라고무순은 신문 일면 제목을 한번 훑어보고는 다음장으로 넘기며 계속 이야기한다. “대학교에 편입하는 것도 아니고, 어학 연수 비용이 만불이 넘으니, … … 당장 마련하기가 어려워금옥은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설거지할 그릇을 싱크대로 옮기며 묵묵히 무순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현우는 뭐라고 해요?” 금옥이 무순이 있는 식탁 쪽으로 몸을 돌려 이야기한다. “별 이야기 안 하던데무순이 식탁에서 일어나 마루로 향하며 답한다. 금옥은 자신의 처지에서 현우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자신은 아직도 빚이 조금 남아 있지 않은가! 6개월 전, 빚을 9할 정도 정리하고, 무순의 집으로 들어온 것에 감사하고 있는 상태에서 현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현우가 잘 되기만을 마음 속으로 간절히 기원할 뿐. 금옥은 몇 개 없는 설거지 통에 있는 그릇들을 바라보며, 힘 없이 수세미를 손에 쥐었다.

 

 엄마, 저 왔어요현우가 금옥이 누워있는 금옥의 방 문을 열고 들어오며, 방 등 스위치를 누른다. “어 그래 어서 와, 오랜만이네!” 금옥이 자리에 일어나 앉으며 말한다. 방으로 들어오는 현우가 씽긋 웃더니, 금옥이 걷어낸 이불 옆으로 앉는다. “별일 없으세요? 아프신 곳은 없으시고요?” “아픈 데는 없어, 자주 좀 와, 내가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금옥이 누군가 들으면 안 되는 말처럼 목소리를 낮춰 속삭인다. “이야기할 사람이 왜 없어요? 큰형도 있고, 손녀도 있잖아요?” 현우는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살짝 미소를 띠면서 말한다. “내 말은 안 들어, 너 밖에 없어, 너 밖에금옥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눈물이 고인 금옥의 눈을 보자 현우의 마음이 울적해졌다. “나도 이야기할 사람 없어요. 회사 다니느라, 일찍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면, 아이들도 잘 못 봐요

죽고 싶어, 빨리 가면 좋겠는데 … …” 금옥이 옆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잘라 눈물을 닦는다. 현우가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한다. “때 되면 다 가실 텐데, 뭘 그렇게 서두르세요, 맘 편히 가지시고요울적한 감정 때문에 현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죽고 싶어, 죽고 싶어 ~~” 금옥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현우는 지금 금옥의 정신 상태가 온전한 것인지 아니며 치매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때 외할머니 보셨다고 하셨잖아요, 꿈에서 보신 거에요?” 현우의 질문에 금옥은 잠시 화장대 쪽을 바라보더니 엄마, 돌아가셨어, 나도 따라가야지하며 힘 없이 손에 쥐었던 휴지를 바닥에 놓는다.

자꾸 어디를 가시겠다고 하세요. 엄마 좀 걸으실래요. 마루로 나갈까요?” 현우가 무릎을 세우며 금옥을 쳐다보며 말한다. “니가 잘되야 할 텐데, 니가금옥이 현우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막내아들 잘되게 해 달라고, 꿈에서 할머니 만나시면 이야기 좀 해주세요현우가 웃으며 말한다. “잘 될 꺼야, 금옥이 현우에게 부축을 받으며 마루로 나왔다. 마루에는 3월 초의 햇살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엄마!! 날씨 조금 더 풀리면, 주간에 가는 요양원 다닙시다. 일주일에 두 세번 가는 것도 있다니까!” 현우가 금옥을 쇼파 쪽으로 인도하면서 말한다. 금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쇼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날씨 참 좋아, 따뜻하지금옥은 창문 넘어 나무 위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금옥과 춘심이 손을 잡고 용당반도 끝자락에 서서 서해 바다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엄마, 저기는 어디야?” 금옥이 왼손을 들어 선박들이 모여 있는 해주항을 가리킨다. “용당포야, 용당포. 오늘 뭐가 들어왔는지 가서 볼까?” 춘심이 4살인 금옥의 손을 이끌고 언덕을 내려가 해주항 입구에 차려진 어시장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비릿한 생선 냄새와 짭조름한 바다내음이 금옥의 코 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금옥은 무엇에 그리 신이 났는지, 춘심의 손을 잡고 깡총깡총 뛰며 춘심을 따라간다. 춘심은 금옥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3년전 중국으로 간다며 나간 후로는 편지 한통 없는 금옥 아비에 대한 걱정이나, 다음달 내야 할 수명의 증등학교 수업료 걱정도 어느새 모두 사라졌다. 그저 모두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이 춘심의 마음에 출렁거렸다. 19439월의 상쾌한 바람이 춘심의 얼굴을 스친다. 언젠가부터 춘심은 김활란이 지은 풍랑에서 구원함이라는 찬송가를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3부 끝, 4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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